우연
크리스마스 장미
이것은 없음이 드러난 자리,
세상의 도화지.
저 콘크리트 벽,
영겁 끝에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 조용히 피어난
한 송이 크리스마스 장미.
그 모습을 들여다보면
화가가 흘린 옅은 물감 같지만,
속엔 형형색색의 의지들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잘게 쪼개 보면
빛줄기들이 서로 얽혀
보이지 않는 그물을 짜고,
이 찰나의 우연은
머지않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피어오른 연기처럼 번져
우리의 관념 속을 생기로 채우고,
없는 것이 없으니
있게 되어버린다.
우린 없는 것을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라고.
크리스마스 장미=없음의 실현
콘크리트 벽이 영겁 속에서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피어난 장미는, 태고의 무가 균열에 의해 깨진 뒤 피어난 유(有)이다.
“없는 것이 없으니 있게 된다”
무를 해석한 존재의 관점이 결국 유를 탄생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