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계절의 경계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잃어도
곧바로 울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슬픔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나는 감정을 느끼기보다
하루를 견뎌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빠와의 기억들이 빠르게 겹치며
스쳐 지나갔다.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움직이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작은 장면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이런 게 파노라마라는 건가?
나는 하늘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죽어서 영혼이 있다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걸까.
대답은 없었지만,
혼자 묻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말을 못 알아듣는 둘째를 바닥에 내려놨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빠가 죽었다고?
어젯밤까지,
아니 열두 시간 전까지
웃으면서 영상통화를 한 사람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전화기 너머로 울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같은 슬픔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동시에 겪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또렷한 현실처럼 가슴을 눌렀다.
남편은 일을 멈추고 조사실로 향했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엄마에게 연락했다.
오래전 이혼한 사이였고,
엄마는 아빠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너네 아빠 때문에”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숨겨야 하나,
동생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가 죽었다는 말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엄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빠가 자살을 했다는데,
열 달 된 아이를 안고
현장에 가는 건 두려웠다.
다행히 엄마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생각보다 덤덤했고,
세 시간 거리를 바로 내려와 주었다.
그 한 가지가
낯설 만큼 고마웠다.
엄마와 동생은 아이들을 보고,
나와 제부는
아빠가 머물던 숙소로 향했다.
원래도 제부와 길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움직이면 덥고 멈추면 서늘해지는
그 계절의 공기가
유난히 몸에 내려앉았다.
몇 시간 전까지 사람이 살던 방은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 평온함 앞에서,
나는 슬퍼할 타이밍조차
놓쳐버린 것 같았다.
제부와 나는 말없이 방을 정리했다.
“이것도 버려요?”
“그냥 다 버려요.”
아빠가 먹었을 영양제,
죽기 직전까지 썼을 이불과 베개,
작업복과 신발.
생각할 틈 없이 봉투에 담았다.
아빠가 이런 곳에서 숙소 생활을 했구나.
집도 있는 사람들이 타지에서
이렇게 버티며 일했구나.
정리되지 않은 공간은
보기만 해도 안쓰러웠다.
정리를 하면서도
‘아빠의 흔적을 지운다’는 생각보다
‘누군가 보기 전에 치운다’는 마음이 앞섰다.
집에서 죽은 것도 아닌데,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듯
손은 자꾸 빨라졌다.
동생과 나 모두 여유롭지 않았다.
남편들이 출근하면 돌도 안 된 아이들을 안고
다시 이곳에 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공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우스운 이유지만,
누군가 쫓아와
“당장 월세 내고 가라”라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망설임 없이, 더 빨리 정리했다.
돌이켜보면 많이 후회된다.
유서라도 있는지 조금 더 천천히,
꼼꼼히 살펴볼걸.
그날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낯설다.
아마,
그날의 나와 비슷한 얼굴로
자기 몫의 하루를 버텼던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더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