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을 서준 5천만 원

1부. 계절의 경계

by 벨라콩

아빠가 금전적으로 늘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니, 서른 해를 사는 동안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빠의 월급이 늘 500만 원에서

많게는 1천만 원쯤 되는 줄 알았다.


혼자 사는데 그 돈을 다 쓴다고?
설령 빚이 생겨도 금방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날 아빠는 담보대출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함께 살던 여자친구와 운영하려던

상가의 보증금을 위해 대출을 받았는데,
그 일로 집을 계약한 담보대출 3천만 원이 막혀

보증을 서 달라는 말이었다.


보증?
차라리 돈을 주고 말지, 절대 서면 안 되는 그 보증을.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정말 정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늘 미안한 표정과 함께였다.


술에 취한 채 우리 집에 와 잠들던 날들이 있었다.
구체적인 자금 계획을 이야기했고,
대출 상담사와의 통화를 옆에서 들려주기도 했다.
마치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증명처럼.


아빠는 알고 있었을 거다.
마음 약한 딸에게 와서 부탁하면,
결국 내가 외면하지 못할 거라는 걸.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지.
이 돈만 해결해 주면 아빠는 고마워서라도
열심히 살 거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아빠를 믿은 게 아니라
그렇게 되길 바란 나의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
부엌 불만 켜놓고 남편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서류 위에 찍힌 숫자가 유난히 크게 보이던 밤이었다.
그리고 결국, 남편과 상의한 끝에
3천만 원 보증을 서주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밀린 핸드폰 요금 30만 원을 대신 내주었고,
아빠의 도시가스와 이자, 생활비를 막기 위해
카드대출 2천5백만 원을 더 받았다.

모두 합치면 5천만 원 남짓.


아빠 일만 잘 풀리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빠와 맥주를 마시며
“나중에 잘 되면 맛있는 거 사줘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아빠와 함께 일하던 남편은 직장에 나가지 못했다.
우리의 채무가 많다는 걸 알았지만
남편에게 다시 일을 나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의 삿대질,
아빠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 남편이었기에
차마 등을 떠밀 수 없었다.
나도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그에게만 버텨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금전적인 압박은
숨 쉴 틈 없이 밀려왔다.

보증 선 원금과 이자,
아빠를 위해 받았던 카드대출과 카드 할부금.
매달 450만 원씩 상환해야 할 돈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거기에 우리 집 담보대출,
보험료, 통신비, 생활비, 어린이집 비용까지.
매달 빠져나가야 할 돈은
순식간에 1천만 원 가까이 되었다.


그 순간,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과연 이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
조금씩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우게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 숫자들을 직접 감당해 본 뒤로
그렇게 믿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때 나는 계산기를 덮지 못했다.
그 숫자들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이 삶을 어떻게 계속 감당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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