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계절의 경계
분명 TV에서는
죽음 이후 곧바로 장례식장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타지에서 죽음을 선택한 아빠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많은 선택지를 남겼다.
허락해야 가능한 시신 이송,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장례식장,
따져봐야 할 비용들.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 앞에서도
현실은 왜 이렇게 결정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지,
그 모든 선택이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씻지도 않은 얼굴에 반팔 반바지,
급하게 끌고 나온 슬리퍼 차림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건 아침 여덟 시쯤이었다.
밤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아빠와 우리는 우리 동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장례식장 밖에서 멍하니 시간을 견뎠다.
웃기게도 그날 기억에 남은 건
아침에 먹다 남은 콩나물국밥 한 그릇뿐이다.
어쨌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영정사진은 내 결혼식 날의 아빠였다.
아빠가 살아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그날의 가족사진뿐이라는 사실이
유난히 슬프게 다가왔다.
모두가 지쳐 잠든 새벽,
나 혼자 남았다.
이 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마음속 말을 한없이 되풀이했다.
누군가 들을까 봐
빠르고, 조용하게 흐느끼면서.
지금은 하늘로 올라가는 중인가요.
아니면 이미 도착했나요.
이제는 마음이 조금 편안한가요.
나는 여전히 마음이 너무 좋지 않네요.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내가 너무 울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그래도 나는 너무 많이 슬퍼.
견딜 수가 없어요.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다음 날 입관을 했다.
주변에서는 보지 않는 게 좋다고 했지만,
죽었다는 사실이 끝내 믿기지 않아
아빠의 마지막 모습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너무 평온해 보였다.
그 평온함을
나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흐르고 또 흐르는 눈물로
내 얼굴은 너무 따뜻했는데,
그 대비처럼 아빠는 차가웠다.
아빠를 만져보았다.
왜 이렇게 차갑고, 왜 이렇게 딱딱하지.
귀는 왜 파랗게 변했을까.
많이 추웠던 걸까.
아빠, 눈 좀 떠봐요.
지금이라도 일어날 수 있으면
한 번만 일어나봐요.
미신처럼 관 속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런 희망은 지금은 없는 거야?
죽은 사람을 붙잡고 나는 참 말도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왔다.
아빠에게는 지인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조문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빠는 내가 알던 것보다
나름 괜찮게 살아온 사람 같았다.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멀리서 새벽이 거의 다 되어 도착했다.
그날의 마지막 조문객이었다.
그 친구는 나와 아빠,
둘 다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10대에는 아빠와 밥을 먹으러 다녔고,
20대에는 셋이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였다.
그날 친구는 위로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울거나, 손을 잡거나,
말없이 나만 봐준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연하 남자친구 이야기부터 근황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만 늘어놓았고,
나는 처음으로 깔깔 웃었다.
그 짧은 십 분 동안,
처음으로 아빠를 잊었다.
그 모습을 가장 불편해했던 사람은 큰아빠였다.
막내동생을 자살로 떠나보낸 사람에게
웃고 있는 조카의 얼굴은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소리를 높였다.
왜 내가 잠깐 웃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느냐고,
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평소 술에 취한 모습만 보아왔던
큰아빠에 대한 감정 위에
혼란과 분노가 한꺼번에 겹쳐졌다.
지나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동생이 죽었는데,
그의 큰딸이 웃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라면,
나도 화가 났을 것 같다.
그 짧은 웃음이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그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