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수야, 동호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작은 행동이나 말투 등으로 크게 감동받거나 상처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당사자에게 들을 때가 있다. 겉으로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론 몹시 당황하게 된다.
꽃봉오리는 활짝 피어서 몇 날 며칠 그 빛을 누리다가 떨어져야 한다. 녹아버린 날개와 함께 떨어진 이카로스는 아직 어려서 서럽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어버린 생이 너무 이르다면 애처로워서 어떡하나? 키가 크고 관옥 같은 얼굴에 웃을 때면 눈에서부터 반달 곡선을 긋던 근수(가명)는 지각을 어찌나 밥 먹듯이 하는지 성적이 어찌나 불량인지 늘 내게 꾸중을 들었던 것인데...
은퇴하여 무료해진 나의 전화기 속으로 어느 날 근수가 들어왔다. 10여 명 직원을 둔 어엿한 사장님이라고 했다. 아내와 딸 셋을 데리고 시골에서 가지고 온 채소 상자를 내려둔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스승의 날엔 찾아와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근수는 국어를 잘해서 참 좋다. 다른 공부도 국어처럼만 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다’라고 해준 나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근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한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딸 셋과 아직은 젊은 아내를 두고 참혹한 혼자만의 시간을 딛고 갔을 근수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듯 아팠다.
어떤 음식은 그와 관련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식당에서 늙은 오이, 노각 무침을 대할 때 나는 근수가 가져다준 노각을 떠올리곤 한다. 너무 이른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누런 노각처럼 생각이 깊은, “선생님!” 하고 내 손을 잡으며 반달이 되던 근수는 이제 정말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에서 뜬다. 떨어진 꽃봉오리는 돌아서 가는 발길에 남아 자꾸만 따라온다.
중학교 2학년 동호(가명)는 우리 반의 반장이었다. 과수원집 아들로 얼굴은 허여멀거니 티가 없었다. 마냥 낙천적이어서 아이들과 장난치고 노느라 정작 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감기로 평소보다 늦게 교실에 들어갔더니 갑자기 출입문 위에서 종이 조각들이 내 머리 위로 눈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깜짝 놀랐고 그것을 빤히 지켜보던 동호를 비롯한 70여 개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웃어대는 소동이 일어났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이 마냥 좋아서 미어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하던 시절이었다.
가을볕이 따가운 어느 일요일 오후, 동호가 호성(가명)이와 함께 나의 자취방에 놀러 왔다. 사과 한 상자를 들고서... 우리는 같이 학교로 가서 농구를 하며 놀았다. 쳐다보면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은 선선히 불고 우리는 청명한 날씨처럼 즐거웠다. 아이들의 청량한 목소리가 공기를 뚫고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몇 년 뒤에 나는 동호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께 놀러 간 그날 정말 재미있었다고, 형이 없는 제게 선생님이 형과 같았다고, 그러나 언제부턴가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고, 반장인 자기는 놔두고 부반장인 상영(가명)이만 찾았다고,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안 계셔서 그냥 돌아서 나왔다고, 언제까지나 선생님을 잊지 않겠다고,
나는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동호가 미덥지 않아 똘똘한 부반장을 더 많이 찾았던 것 같았다. 나는 어린 동호의 원망 어린 눈을 못 보거나 못 본 체했던 것이다. 동호의 맑은 웃음소리, 귀여운 행동거지와 함께 원망 어린 표정이 떠오를 때면 나는 자책감으로 마음의 평온을 잃고 만다. 나는 아직도 빛바랜 동호의 편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