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한 며느리의 탄생 1
상견례 다음 날이었다.
J의 가족에게서 잠깐 들르라는 연락을 받았다.
J는 왜 부른 것인지 모른다며 내 눈을 슬쩍 피했고,
“별일 아닐 거야.”라는 말에 나는 그 말을 믿고 그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열린 집은 어둡고 조용했다.
거실의 커튼은 꽉 닫혀 있었고, 천장 등은 꺼져 있었다.
다이닝 테이블의 노란 불과 벽의 흐릿한 보조등만 집안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금빛 액자 속 정물화 포스터는 어둠에서도 번들거렸고,
겹겹이 놓인 장식들과 사진 액자가 가득한 가구들은 오래된 극장 세트처럼 무거웠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단숨에 찢는 퀴퀴한 음식 냄새와 빨래 냄새가 코를 스쳤다.
“거기 앉아.”
나는 거실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 가까운 소파의 구석에 살짝 앉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도망가라고 속삭였다.
J도 어딘가 앉았을 텐데,
덩치 큰 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앉자마자
J의 가족 중 한 사람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말은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졌고,
내가 알고 있던 교양과 품위의 이미지는 빠르게 흩어졌다.
“상견례 자리에서 기분 상해서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
그 순간, 어제 상견례의 한 장면이 번쩍 스쳤다.
아버지가 나를 칭찬했던, 어색하고 낯선 장면.
평생 거의 들어본 적 없던 말이라
나는 당황해서 잠시 숨을 골랐고
그저 조용히 웃어 보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이
“예의가 없다”는 이유로 공격의 근거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아직은 남인 사람이
나를 붙잡아 놓고
이렇게 갑작스레 분노를 퍼붓고 있었다.
부촌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중문도 없이 저런 소리를 지르면 밖에서도 다 들릴 것이다.
‘집에 갈 때 앞집 사람을 마주치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하나...?’
그 생각이 수치심과 함께 밀려왔다.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J보다 더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음에도
딸 가진 집이라면 감사 인사를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러더니 갑자기
J의 형을 자랑하며
“공부만 끝나면 롤렉스 금딱지를 사줄 거야.”라는 말이 이어졌다.
잠시 뒤에는 다른 사돈의 재력과 학력까지 덧붙였다.
나는 그 말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그 말들이 내 가족을 낮춤으로써
나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예의’는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입만 열면 도리를 따질 법한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그 말들은 상황에 따라 접히고 펴지는 종이처럼 가벼워 보였다.
정작 그들이 내세우던 예의는, 막상 자기들에게 돌아와야 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나는 그날, 인간의 도리가 무겁게 나를 누른 것이 아니라
예의를 자기 편한 대로 구겨 쓰는 어떤 습관 같은 것에 조용히 눌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파혼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스물셋의 나에게 그들은 너무 크고 벅찼다.
어떻게든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를 붙들었다.
탁한 공기 속에서 어떤 계산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선을 둘 곳이 없었고, 얼굴은 어느새 눈물과 콧물로 뒤섞였다.
분노로 가득 찬 말들이 거실을 떠다녔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아주 희미한 무언가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