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

알뜰한 며느리의 탄생 4

by 정아린


내가 갑자기 바느질을 하기 시작한 것은

J의 어머니가 했던 말들 때문이었다.


J의 형의 아내, 형수가 이불이나 커튼을 만들어 미국에서 보내줬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미적감각은 J의 어머니 집을 꾸미는 데 백 퍼센트의 효과를 발휘했고,

실내복을 포함해 집 안은 꽃무늬와 퀼트로 가득 차 있었다.
천으로 덮어씌운 것들 대부분이 그녀의 선물이거나 솜씨라는 말도 덧붙여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늘 이런 말이 붙었다.

“교회 모임이 본가에서 자주 있으니까,

손님들이 앉을 방석은 네가 만들어 와야지.”


결혼한 여자는 재봉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그 말은 설명이라기보다 이미 내려진 결정처럼 들렸다.


생각해 보면 친정집에도 재봉틀이 있었다.

엄마가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왔다는,

꽃무늬 조각이 장식된 커다란 나무 가구 속 재봉틀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바늘을 무서워해 그 재봉틀을 쓰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외할머니가 집에 오실 때만 그 문이 열렸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인형 옷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아이였다.


신혼집에 다용도실 문이 없었다.

J의 어머니는 커튼을 만들어서 달아두라고 했다.


그 말을 계기로 나는 값이 싼 재봉틀 하나를 샀다.


그 후 나는

집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꽃무늬 천으로 만들어 덮기 시작했다.
퀼트 책을 사서 퀼트를 만들었고, 식탁보와 커버, 이불이 늘어났다.


사실 나는 꽃무늬에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집안에서는 꽃무늬가 며느리의 유능함처럼 보였고,

나는 기꺼이 내 취향을 지워나갔다.


임신 여섯 달쯤 되었을 때였다.

J의 어머니는 이제 임부복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준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무언가를 줄지도 모른다는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생활비가 빠듯해 임부복을 살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때였다.

나는 J의 옷을 입고 다녔고, 그 말 하나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만나 한참을 걸어 동대문 시장으로 갔다.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계속 걷다 보니 배가 조금씩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걸음이 빠른 J의 어머니는 앞서 나갔고,

나는 무거운 몸으로 그 속도를 따라가려 애썼다.


몇 개의 건물을 지나 한 포목점 앞에서야 그녀가 멈춰 섰다.

꽃무늬 가득한 천을 만 이천 원어치 사고, 값을 깎았다.


“이걸로 임부복 만들어 입어라.”


울컥했지만 이미 몸은 먼저 지쳐 있었다.


그 후에도 몇 군데 포목점을 더 들렀고,

그녀가 필요한 것들을 산 뒤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 백화점으로 가 그녀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먹었다.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나는

그녀가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동안 반도 먹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배는 계속 뭉쳤다.


나는 그 꽃무늬 천을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한동안 꺼내보지 않았다.


J의 어머니는 퀼트 방석을 재촉했고 임부복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나는 방석은 만들어 드렸고, 옷은 만들지 않았다.

스크린샷 2025-12-22 오후 4.42.17.png <Merry Christma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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