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한 며느리의 탄생 3
나의 신혼은 내 집이 아닌,
'그분들'의 작은 영토 안에서 시작되었다.
꾸짖음과 비난의 부름은 결혼식 전날까지 이어져
결국, 호출기가 박살이 난 날도 있었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시작하는 독립된 삶을 믿고 싶었다.
J의 어머니는 공사장에서 주웠다는 작은 샹들리에를 가져다주었다.
“이걸 닦아서 벽에 걸어.”
부엌 벽에는 시트지를 붙이라고 했다.
결혼 전 내내 자랑하던 화려함은 결혼식과 함께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나는 때가 잔뜩 묻은 유리알을 하나하나 닦아 벽에 걸었다.
낡은 부엌 타일을 깨끗이 닦아 시트지로 붙이며,
내 가슴속 어디선가 일렁이는 불편함도 함께 덮어 눌렀다.
시댁에서 처음 사과를 깎던 날이었다.
조심조심 돌려 깎아 접시에 올렸다.
사과 심지가 남았다.
그때까지 사과를 제대로 깎아 본 적 없던 나는 잠시 그걸 들고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하더라?’
친정엄마가 사과 심지를 드시던 장면이 떠올라 나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운이 좋게 -정말로 운이 좋게- 그 장면을 J의 어머니가 보았다.
“어머나, 세상에 쟤는 사과 심도 먹네.”
그 순간,
나는 ‘알뜰한 며느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는 그 말이 칭찬인지 역할인지 알지 못한 채, 이 익숙하고도 어색한 이름이
내게 붙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날 이후, 나의 사과 심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며느리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하나의 표본처럼 사용되었다.
원가족에서 칭찬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나는 그들의 말에 힘을 얻었다.
백화점이 몇 개나 있던 동네에서 집과 멀리 떨어진 재래시장을 오가며
검은 봉투를 손에 가득 들고 다녔다.
그중 일부는 시댁에 드리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음식의 양을 가늠할 줄 몰라 산처럼 전을 부치자,
“전은 앞으로 네가 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된장찌개를 두고는 왜 이렇게 맛있냐며 비법을 묻기도 했다.
나는 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친정 식구들은 내가 간을 못 맞춘다고 했지만, 나는 결혼으로 생긴 가족의 말들을 믿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했다.
어느새 나는 많은 일을 당연하게 맡고 있었다.
칭찬은 나를 기쁘게 하기보다는 점점 바쁘게 만들었다.
딸이 어느 정도 컸을 때였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할머니가 저기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 눈빛이 이상해.”
그 말을 들었을 때 설명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J의 어머니의 눈,
투명한 검은색의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시선 안에서 숨을 고르고 살고 있었다.
<백설공주>,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