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의 철학
나는 평생을 기록하고 증명하며 살아왔다.
대학 시절의 치밀한 유기합성 실험 데이터,
석사 시절의 정교한 통계 모델,
그리고 12년 동안 밤을 새워가며 써 내려간 차장 박온유의 수만 장의 보고서들.
나는 그것들이 나를 영원히 지탱해 줄 훈장이자 든든한 성벽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쉽게 그 기록들을 배신했다.
회사는 12년의 헌신을 단 한 줄의 인사 명령으로 지워버렸고,
나를 시급 10,300원짜리 사원으로 다시 정의했다.
완파된 차 안에서 내 기억이 통째로 삭제되었던 그 6시간의 블랙아웃처럼,
세상이 정한 기록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손에 의해 언제든 찢겨나갈 수 있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그때 깨달았다.
영구히 남으려 발버둥 치는 기록은 결국 나를 과거에 가두는 족쇄가 될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스스로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분필을 잡았다.
매끄러운 칠판이 아닌,
수성구 대로변 어느 뮤직바의 거친 검정 페인트 벽 앞에 서서 하얀 분필가루를 흩날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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