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날 통과된 법안의 이름은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었습니다. 같은 달 3일, 법제사법위원회. 여기서는 '법왜곡죄' 신설을 담은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두 법안 모두 이 책에서 우리가 논의한 문제들—언론 권력의 무책임성과 사법부의 폐쇄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책 속에서 이론적으로 제시한 해법들이 현실에서 입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이릅니다. 아니, 어쩌면 우려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법안들이 제기하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두 법안의 등장 배경 -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순간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6시간 만에 국회가 이를 해제했습니다. 이 극적인 6시간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언론들은 같은 사건을 보고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어떤 언론은 "내란"이라 불렀고, 어떤 언론은 "정당한 통치 행위"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신문의 1면에는 대통령 체포 시도가 실렸고, 어떤 신문의 1면에는 대통령을 방어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실렸습니다.
같은 현실, 완전히 다른 진실. 시민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짜입니까?"
사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일련의 재판들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유사한 사건인데도 어떤 판사는 무죄를, 어떤 판사는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판사 복불복이네." "법이 있어도 소용없구나."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언론의 자유와 사법권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무책임과 편파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두 법안입니다.
2. 허위조작정보근절법 - 언론 자유의 경계를 다시 긋기
법안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허위조작정보를 고의로 유포한 언론이나 유튜버에게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혁명적 변화입니다. 현재는 언론이 오보를 내도 실제 손해만 배상하면 됩니다. 명예훼손으로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져도, 언론사가 내는 벌금은 기껏해야 수천만 원입니다.
하지만 5배 손해배상이 도입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0억 원의 피해가 인정되면 50억 원을 배상해야 합니다. 이것은 언론사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즉, 언론이 거짓을 보도하기 전에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찬성론은 명확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진짜 자유가 존중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정말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조작 정보는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어 막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책에서 논의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책임 있는 자유"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자유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유는 제약되어야 합니다. 거짓 정보를 퍼뜨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여론을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해치는 행위는 자유가 아니라 권력의 남용입니다.
하지만 반대론도 거셉니다. "권력자의 부정비리 의혹을 공론화해야 할 언론과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겠다는 독재적 입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비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허위"를 누가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기자가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폭로했습니다. 그 정치인은 소송을 겁니다. "이것은 허위조작정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 기자와 언론사는 엄청난 법적 비용과 시간을 써야 합니다. 설령 결국 기자가 승소해도,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더 문제는, 다른 기자들이 이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요? "저렇게 소송 걸리면 골치 아프네. 차라리 그런 기사는 안 쓰는 게 낫겠다." 이것을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라고 합니다. 법 자체가 억압하지 않아도, 법의 존재만으로 언론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국민의힘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법이 사실상 권력자가 비판을 막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기업 등의 권력자가 비판 보도를 차단할 목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이 남발되는 길이 열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국 법원이 봉쇄소송임을 인정하면 그 사실을 의무적으로 공표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에 관한 특칙'을 두기로 했지만, 권력자가 소송을 제기한 목적이 '언론의 비판·감시 방해'라는 점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3. 법왜곡죄 - 사법권 독립과 책임의 균형
법왜곡죄는 더 급진적입니다. 판사나 검사가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해서 적용하면 최대 10년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일까요? 판사가 증거나 사실관계를 조작해 판결·결정하는 경우, 적용돼야 할 법령을 적용하지 않거나 부당하게 적용한 경우입니다. 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소권을 현저히 남용하거나 증거를 조작해 피의자를 기소하면 처벌받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책에서 제시한 "책임성"의 구현입니다. 판사와 검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결정 하나로 누군가는 감옥에 가고, 누군가는 자유를 얻습니다. 이렇게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권력을 남용했을 때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시스템이 아닙니다.
찬성론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라임 사건에서 검사들은 총 536만 원 상당의 술 접대를 받았는데도 뇌물죄가 아닌 처벌 수위가 낮은 청탁금지법만을 적용했고, '숫자 나누기'라는 기상천외한 셈법으로 1회 금품 상한 100만 원 규정을 회피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법의 왜곡입니다. 누가 봐도 뇌물인데, 기술적 조작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게 만든 것입니다. 만약 법왜곡죄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독일의 경우, 형법 제339조는 "법관, 법관 이외의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도 이미 이런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론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법의 왜곡"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법은 해석의 영역입니다. 같은 조문을 보고도 법률가들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법학의 본질입니다. 만약 어떤 판사가 독특한 법리 해석으로 판결을 내렸는데, 나중에 그것이 "법의 왜곡"으로 판단되어 처벌받는다면?
판사들은 위축될 것입니다. 새로운 법리를 시도하지 않고, 안전한 판결만 내리려 할 것입니다. 대법원 판례와 다른 판결을 내렸다가 법왜곡죄로 기소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비상계엄 전담재판부 설치 관련 법안과 법왜곡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신중한 논의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판사들 스스로가 이 법에 우려를 표명한 것입니다.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헌법상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원칙의 관점에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누가 판사와 검사의 "법 왜곡"을 판단할 것인가? 다른 판사와 검사입니다. 결국 사법부 내부에서 서로를 처벌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정치적 압력에 따라 선별적으로 적용될까요?
4.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
두 법안을 보면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 법으로 진실과 정의를 강제할 수 있습니까?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은 전제합니다. "허위"와 "진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과학적 사실조차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가 효과 있다는 것이 진실입니까 허위입니까? 세계보건기구(WHO)조차 입장을 여러 번 바꿨습니다. 만약 어떤 기자가 "마스크는 효과가 없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보도했다가, 나중에 그것이 "허위"로 판정되어 거액의 배상을 해야 한다면?
정치적 견해는 더욱 복잡합니다. "이 정책이 경제에 좋다/나쁘다"는 것은 진실입니까 의견입니까? "이 정치인이 부패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추측입니까?
법왜곡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법 적용"과 "왜곡된 법 적용"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10명의 법학자에게 물으면 10개의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둘째,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10년 후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게 될까요?
낙관적 시나리오를 상상해봅시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 덕분에 언론들이 더 신중해집니다. 팩트체크를 강화하고, 출처를 확인하며, 선정적 보도를 자제합니다. 법왜곡죄 덕분에 판사와 검사들이 더 공정해집니다. 법을 왜곡해서 적용하려는 유혹이 사라지고, 오직 법리와 양심에 따라 판단합니다.
결과적으로 언론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회복됩니다. 시민들은 다시 언론을 믿고, 법원을 믿으며, 민주주의가 건강해집니다.
하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도 가능합니다. 언론들은 위축됩니다. 권력자를 비판하는 기사는 쓰지 않습니다. 소송 걸릴까 봐, 거액의 배상금을 물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권력 감시 기능이 약화되고, 부정부패는 더 은밀해집니다.
판사와 검사들도 위축됩니다. 새로운 법리 해석은 시도하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와 다른 판결을 냈다가 법왜곡죄로 기소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법부는 경직되고, 사회 변화에 대응하지 못합니다.
어느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법은 만들어보기 전까지는 그 효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5. 영원한 긴장 속에서 - 완벽한 답은 없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아마 답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안들이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찬성해야 합니까, 반대해야 합니까?"
정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완벽한 답은 없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 합니다.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독립과 투명성 사이에서, 권력 견제와 권력 남용 방지 사이에서.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문제가 생깁니다. 자유만 강조하면 무책임이 되고, 책임만 강조하면 억압이 됩니다. 독립만 강조하면 폐쇄성이 되고, 투명성만 강조하면 위축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진자처럼 흔들리면서, 적절한 지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과 법왜곡죄는 그 진자가 한쪽으로 흔들리는 움직임입니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자유"와 "독립" 쪽에 무게를 뒀습니다. 그 결과 언론은 너무 자유로워졌고, 사법부는 너무 독립적이 되었습니다. 이제 진자가 "책임"과 "투명성"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적절한 교정입니까, 아니면 과도한 반동입니까?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는 지켜봐야 합니다. 이 법안들이 통과되고, 시행되면, 우리는 그 효과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만약 정말로 언론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사법부의 공정성이 개선된다면, 우리는 환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언론이 위축되고, 권력 비판이 사라지며, 사법부가 경직된다면, 우리는 즉시 문제를 제기하고 법을 다시 바꿔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고쳐 쓰는 것입니다.
2025년 12월, 우리는 민주주의를 업데이트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1987년의 원칙들을 성스러운 것으로 떠받들며 변화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꾸려 합니다. 비록 그 변화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실험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실험입니다. 실패하고, 배우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입니다.
당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방관자가 되지 마십시오. 이 법안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보십시오. 언론이 정말 더 책임감 있어졌는지, 아니면 위축되었는지 확인하십시오. 사법부가 정말 더 공정해졌는지, 아니면 정치화되었는지 관찰하십시오.
그리고 목소리를 내십시오. 잘되고 있으면 지지하고, 잘못되고 있으면 비판하십시오.
2025년의 이 실험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는 또 다른 실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경험입니다.
그러니 잘 기록하십시오. 잘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십시오. "우리는 2025년에 이런 실험을 했다. 이것은 성공했고, 저것은 실패했다. 너희는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실험을 하라."
이것이 민주주의를 이어가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