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하지만 나는 호수가 될 수 없었다.

닮고 싶었던 질서와 기술, 설명되지 않는 나

by 파란 점의 관찰자

선수 시절,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어른을 만났다면

선수의 옷을 벗고 코치라는 옷을 입은 뒤에는

내 코칭 인생을 건져 올려준

한 멋진 선배이자 어른을 만났다.


코치로서 돌아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서로 다른 성장 단계에 놓인 선수들,

경험과 수준이 각기 다른 많은 수행자들과 함께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기는

선수였던 시절의 나의 열정과

그들의 열정이 가장 닮아 있던 때였다.


나는 당시 내가 가진 최선의 기술로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마음을 쏟았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내가 얼마나 몰입하느냐가 곧 그들의 성과'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한 멋진 선배이자 어른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었다.

나는 늘 남보다 내가 궁금한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결과 역시

누군가의 변화보다

내 결과를 가장 먼저 알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평가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건 뭐라고 생각해?"


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는 역할이 내 몫이라 여겼는데,

그날은 오히려

그가 던진 질문 하나가

내 사고의 호수를 크게 출렁이게 했다.


그 질문 이후, 나는 결심했다.

과거의 나로 돌아가

내 기술을 다시 꺼내어 배워보자고.

지도자가 아니라 학습자로서,

다시 갈고닦아보자고.


코칭현장 사이사이

나만의 연습을 이어갔고,

타인을 돕는 과정 속에서

동시에 내가 배우는 시간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그 멋진 선배이자 어른은

내게 기술의 '요령'이 아니라

'개념과 원리'를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주었다.

정말,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배워가던 중

나는 어느 순간

내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를 따르고,

그처럼 멋진 어른의 복제품이 되고 싶었다.

완결된 질서,

고요하고 안정적인 규칙,

오류 없이 잘 작동하는 기술 코치의 모습.

나 역시

그런 완벽하고 보기 좋은 지도자가 되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마주한 나는

그가 아니었다.

그의 기술을

그의 방식 그대로 완성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질서 안에 고요히 들어맞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는 변수였고,

설명되지 않은 오답이었으며,

어딘가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 사실 앞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혼란의 순간이야말로

나만의 코칭이 시작된 전환점이었다.


나는 더 이상

호수 그 자체가 되려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잔잔한 호수 위에 던져진

하나의 돌멩이로 남기로 했다.


파문을 일으키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

원리를 배우되

그 안에 갇히지 않는 존재로.


신기하게도

그 멋진 선배이자 어른은

선수 시절 만났던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어른과 닮아 있었다.

넓고 깊은,

그리고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나를 견뎌주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였지만

행동은 늘 나를 위하고,

조용히 도움을 건네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은

인생에서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호수를

나는 두 번이나 만난 셈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청출어람'이라는 말은

나에게 조금 어려운 목표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분들처럼 되려 애쓰기보다는,

그들의 잔잔한 호수 위에

이질감 있는 돌멩이 하나로 남고 싶다.


그렇게 배우며,

작은 울림을 남기며,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