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2024년 가을,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한 지인이
오래전 내가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십여 년 전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는 사람보다 오래 남는가 보다.
11월 중순, 애월의
‘녹고뫼 오름’을 함께 오르던 날이었다,
짧아진 햇살과 깊어진 바람 속에서
나는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를 불렀다.
제주의 하늘은 4.3의 기억을 품고 있었지만,
그 노래는 낯설지 않았다.
선율은 풍경이 되었고, 계절은 음계처럼 흘렀다.
그 여운을 안고, 2025년 2월 18일.
나는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 고대 극장 테아트로 그레코 Teatro Greco에 섰다.
함께한 이는 오랫동안 한국의 장애아 보육에 헌신하다
최근 등단 이후 문필가로 나선 지인이었다.
이 여정은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지중해 크루즈 일정 가운데 하나였다.
타오르미나는 기원전 8세기경,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일부였다.
상업과 예술로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운 도시.
기원전 3세기경 건립된 극장은 로마 시대에 증축되었고,
19세기 괴테, 오스카와일드, D.H 로렌스가 이 자리를 지나갔다.
가랑비 속 극장은 열주列柱 너머로 이오니아 해와 2300년의 시간을 견뎌왔다.
괴테는 이곳을 ‘작은 천국’이라 불렀다.
극장의 뒤로는 눈 덮인 에트나(3,323m) 산이 여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타오르미나의 고대 그리스 극장 테아트로 그레코
지인의 도반으로 떠난 이 여정에서,
이 땅의 숨결은 내게 한 곡의 노래로 다가왔다.
괴테가 예술적 영감을 얻은 그 자리에서.
나는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를 조용히 다시 불렀다.
“Το τραίνο φεύγει στις οχτώ,
ταξίδι για την Κατερίνη.”
”기차는 여덟시에 출발합니다.
카테리니를 향하여“
노래는 바람을 타고 극장 안으로 퍼졌고,
박수는 그것이 혼잣말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여행지마다 부르는 내 노래는 헌사이자 기도였다.
언젠가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의 무명의 용사 기념비 앞에 서게 된다면,
이 노래를 다시 부를 것이다.
이름 없이 쓰러진 이들과, 그들을 노래로 되살린 예술가들을 위해.
그리고 젊은 날의 나 자신에게도.
그때 나는 강원도 산골의 전방부대에서 복무하던 이등병이었다.
첫 면회를 온 친구들과 계곡으로 향했다.
발을 담근 물속에서 작은 뼛조각 하나가 걸렸다.
담배 파이프쯤으로 여겼던 그것은 사람의 뼈였다.
그곳이 6·25 격전지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계곡은 갑자기 침묵에 잠겼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혼백 앞에서 조용히 사죄했다.
그날 이후 침묵은 내게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지금 와서야 그것을 ‘비움’이라 부른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그 비움을 지나온 ‘성찰’의 흔적일 것이다.
1940년대, 전쟁의 11월.
카테리니로 향한 기차, 플랫폼에 남은 이별.
여덟 시는 부재의 시간이 되었고,
그 11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Mikis Theodorakis(1925~2021)는
그리스 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예술가였다.
그에게 음악은 기억이었고, 저항이었다.
부주키의 서늘한 선율은 민중의 삶을 품었고,
그의 음악은 슬픔과 기쁨, 저항과 해방이 교차하는
‘기억의 언어’가 되었다.
기차는 이미 떠났지만,
노래는 남아
우리 가슴에 멍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