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n prison
‘커서 난 뭐가 될까 커서 마우스 커서처럼 큰 세상 밖으로 벗어나지 못할까’ 어릴 때 자주 따라 불렀던 리쌍이라는 그룹의 회상이라는 노래의 가사말이다. 어릴 때는 큰 생각 없이 라임이 입에 착착 감겨서 따라 부르고는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 가사는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화면 속에 갇혀산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스마트폰 이전에도 TV와 컴퓨터 화면에 우리는 갇혀 살았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TV와 컴퓨터와는 다르게 스마트폰에는 공간의 제약이 없다. 집, 차, 직장, 지하철, 버스 등 어디서든 우리는 스마트폰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전자기기 화면 속에 갇힌 우리는 컴퓨터 화면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우스 커서와 같다. 그렇다 우리는 ‘커서족’이다.
윗머리 12mm, 옆머리 9mm로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남정네들끼리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교실에서 서로 장난을 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침 7시 30분에 만나 밤 11시에 헤어지니 고등학교 친구들은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 함께하는 사이였다. 서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위로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해주며 서로에게 버팀목 같던 존재였다. 같이 땀 흘리고 눈을 맞추며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또 단단해졌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덧 직장인이 되었다. 평소 자차로 출퇴근을 하기에 평일에는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없다. 주말에 약속이 있어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평소였다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했을 테지만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이라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영등포구청역에서 탑승했고, 다음 역인 문래역에서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듯한 학생들 두 명이 탔다.
“야 피곤하다.”
“야 나도.”
“아, 이번 중간고사 못 보면 어떡하지.”
“괜찮아 공부 열심히 하면 되지. 아직 시간 있잖아.”
그 나이대에 하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선은 스마트폰에 갇혀있다.
같은 칸의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스마트폰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도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컴퓨터 화면에는 마우스 커서가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는 커서가 없다. 그때 스마폰에 내 눈이 반사되어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커서족’이다.
서두에 언급한 노랫말의 가사는 마우스 커서처럼 화면 안에 갇혀 큰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할까 봐 본인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우리 커서족에게는 화면 안에 너무나도 크고 넓은 세상이 있다. 현실에서는 경험도 하기 힘들 만큼 다양하고 넓은 세상이.
화면 속 크고 넓은 세상에 시선을 빼앗겨 가깝고도 소중한 나의 세상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 나는 ‘커서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