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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당신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들이나, 혹은 딸이 대인 관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가?
당신이 늘 쓰던 그러한 방법들로 조언할 것인가.
챗 지피티와 대화해보아라. 책을 읽어라. 존경하는 사람과 얘기해봐라. 내가 본 유튜브 영상이 있는데 보여주겠다. 이 강연을 봐라. 이 이야기를 들어 봐라.
그렇다. 타인의 얘기를 들어보는 일이야 말로 진정 나를 위로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위대한 누군가의 얘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실천하려는 의지 또한 생긴다. 지금이라도 무언가 바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무조건적인 진리가 아닐 수 있다.
지금부터 공감이 가는 얘기와 그렇지 않은 얘기 있을텐데, 스크롤을 내리며 공감가는 부분만 읽어봐도 좋다.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내가 고통 받는게 남 때문은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누군가 나 대신 고통을 받아줄 수 있는가.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내 고통은 엄연히 내가 감내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이상 역시 뒤집힐 리 없는 명확한 진리다.
그러니 생각해보라, 위의 조언은 어떤 관점에서는 틀린 얘기다.
그러니 다음 사실도 명확해진다.
다시 말해, 나와 차분한 대화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아주 조금은 알고 있다. 당신이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보통 사람들은 100번을 시청하면 한 번의 댓글을 단다. 하지만 당신은 이 글을 검색에다 클릭까지 한 사람이다. 그러면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였단 말인가.
지금 잠시 스크롤을 멈추고 10초 이상 심호흡해보라. 나 자신의 고통을 조심스럽게 꺼내 마주하라.
지금이다. 지금 잠시 떠올려보라. 무심코 들어왔어도 괜찮다.
그러고 나서 이런 질문을 해보라.
고통을 동정하는 것도 아니다. 위로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당신의 고통이라는 존재를 조금 의인화하여 마주보는 작업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는 진지할 정도의 몰입이 필요하다. 대답이 들릴때까지 차분히 물어봐야 한다.
분명 어떤 이유들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들을 머릿속에서 잘 정리해놓아야 한다. 그러면 아래와 같은 이유로 보통 종속되기 마련이다.
심리학자 칼 융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대부분의 인간은 보통 자신의 페르소나(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융의 이론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사회 속에서 적절히 생존하기 위한 방어 본능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 완벽주의. 지금 이 표현보다 더 완전한 표현은 찾기 힘들다. 당신은 일종 (어떠한 분야[혹은 분야들]를 중심으로) 완벽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완벽주의는 보통, 내제되어 있는 결핍, 유전, 기타 여러가지 환경에 의해 생겨나게 된다. 어쩌면, 완벽주의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완벽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단단한 자기와의 시간이 시작된다.
침묵이 있다면, 정의와 죄악, 악함과 선함, 칭찬과 질투, 두려움과 환희, 우리 인생을 가로지르는 어떤 것도 나의 단단한 내면을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특별히 어떠함에 대하여 그렇게 반응하지 말아보자. 오로지 나와만 대화하는 시간인데, 뭐게 문제인가. 사회성 결핍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가볍게 그 사람의 반응을 대해보자.
그리고 적당한 침묵을 유지해보자. 이것은 당신을 매우 강하게 만들어준다.
이 세상의 억울함, 분노, 슬픔, 고통에 대한 나름의 표현이다. 그리고 침묵을 유지하다보면, 생각보다 이 세상은 어찌나 고요한지 이루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침묵을 유지한 채 몸을 움직여보자. 걷는 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댄스 타임인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나름대로의 엉덩이 흔들기를 하며 씰룩씰룩 웃으며 앞으로 걸어보자.
다 걸었으면, 또 할 걸 하기 위해 꺼내자.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돈을 벌거나, 글을 쓰거나, 일을 하거나, 아니면 푹 쉬거나 무엇이든 나를 위해 한 발짝 걷다보면, 더 이상 타인을 위해 태어난 나의 페르소나(가면)을 벗고 나를 위해 산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무척 많다. 남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은 거짓이다. 모두 남에게 관심이 많다. 사실 정확히는 '나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뭐라할까봐' 관심이 많다.
남들도 사실 다 인간이라는 것이다. 당신과 '아주 크게'는 다르지 않다.
이런 글이 당신에게 도움이나 썩 됐으려나 모르겠다. 부디 오늘 하루 푹 자고 일어나, 다시 내일 할 일을 또 하기를.
이 글을 본 당신은, 당신의 자녀에게 '딱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답해보라.
아들(딸)아.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너와의 관계는 어때? 라고.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귀하께, 작가 rebirth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