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천천히 친해지는 중입니다

by 씨야

아이 둘을 키워내고 나니,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남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오래 사용하지 않던 서랍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낯선 향이 스며 나오는 것처럼.
처음엔 이 여유가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늘 누군가의 일정에 맞추고,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며 살아오느라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마흔일곱이라는 나이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나이입니다.


어떤 것들은 이미 지나갔고, 어떤 것들은 이제 시작할 수 있는 시기.
이제야 나에게 ‘하고 싶은 게 뭐였지?’ 하고 묻게 되는 그런 나이.
그 질문 끝에서 뜻밖에도 ‘낚시’라는 단어가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사실, 낚시는 늘 멀리 있는 취미라고만 생각했어요.

여행지에서 우연히 본 낚싯대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다를 바라보던 평온한 장면들.

그 모든 게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여겨졌죠.

하지만 아이들이 졸업하고 난 뒤, 문득 느껴진 허전함과 동시에 들어온 바람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네가 너를 돌볼 차례야.”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낚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장비를 사야 하는지도 몰랐고, 매듭을 묶는 손은 자꾸만 엉켜버렸습니다.
입질이 와도 재빠르게 올릴 줄 몰라 허둥대기도 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이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감정이 더 컸습니다.
어른이 된 후 처음으로, 나는 초보라서 편안했습니다.

못해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고,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바다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결은 늘 일정한 박자를 가지고 흔들렸고, 나는 그 리듬에 맞춰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낚시터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마음이 복잡할 땐 파도 소리가 대신 답을 해주었고, 잡히지 않는 날에도 그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떤 도전은 기록을 남기지만, 어떤 도전은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워줍니다.
나에게 낚시는 후자였습니다.

특히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 안의 빈자리를 조용히 메웠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놓아주고 난 뒤, 나는 스스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법만 배운 채, 나를 돌보는 방법은 잊고 살아온 시간들.


그 공백을 채워준 건 바다였습니다.
기다림과 실패와 작은 성취, 그리고 고요한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내 일상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어요.

낚싯대를 잡고 바다를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나에 대한 생각이 정리됩니다.
조용히 흔들리는 찌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동안, 내가 놓쳐왔던 감정들이 하나씩 올라옵니다.
힘들었던 순간도, 기뻤던 순간도, 너무 바빠서 지나쳐버렸던 나의 마음도. 바다는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나를 듣습니다.


마흔일곱.
누군가는 늦은 나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나이가 너무 좋습니다.

내 인생의 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는 나이.
누구의 기대도 아닌, 나의 선택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는 나이.
나는 지금,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의 삶을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아직 낚시가 능숙하지는 않습니다.
매듭도 더 익혀야 하고, 바람 읽는 법도 더 연습해야 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바다도 처음에는 나를 경계했겠죠.
이제는 조금씩 손을 내밀어주는 듯합니다.
우리도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니까요.

앞으로도 나는 바다를 더 자주 찾을 겁니다.그곳에서 나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내 나이 마흔일곱, 나는 지금 바다와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친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