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별의 예고는 사랑 속에 숨어 있었다

사랑이 있는데 없었다

by 가린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9년이라는 시간은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이 분명히 있는데

사랑이 없는 것 같았다.


“오빠는 내가 왜 좋아?”

“그냥 다 좋아.”

“아니, 구체적으로 말해줘.”

“예뻐서.”

“아 좀—”

“진짜야.”

“됐어.”


우리는 이 대화를 9년 동안 반복했다.

처음엔 확인받고 싶어서 물었고,

나중엔 확인인지 습관인지 그 중간쯤이었다.

그는 늘 같은 말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이별 하루 전까지도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아침이면 눈 뜨자마자 영상 통화로 서로를 불렀고,

밤이면 하루의 끝을 다시 영상 통화로 닫았다.

함께 살던 1년 동안은

아침이면 자고 있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출근했고,

밤이면 “사랑해”라는 말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런 다정함이라면

우리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헤어졌다.


어느 날부터 그는 자주 말했다.

“많이 사랑해, 은수야.

그런데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우린 아마… 이혼할 것 같아.”


그 말은 반쯤은 사랑의 고백처럼 들렸고,

반쯤은 이별의 예고처럼 들렸다.

겉으로는 내 불안을 잠시 덮어줬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불안을 조용히 만들어냈다.


어떻게 ‘사랑하는데 이별할 것 같다’는 말을

그토록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사랑을 말했지만

나는 미래를 묻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해라는 같은 문장을 두고

전혀 다른 의미를 들었다.


그리고 그 작은 온도 차이가

서서히,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우리 관계에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