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는 속도에 관하여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평소의 호흡으로는 일이 흐르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인위적으로 한 톤을 올렸다. 문장의 끝을 단단히 닫고 여지를 지웠다. 상대의 표정을 읽을 새도 없이 결론으로 밀어붙였다. 모니터 속 문서가 정갈해질수록, 내 안의 결은 거칠어졌다.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쓰는 일. 그 낯선 힘은 편리했지만, 성공의 뒤편에서 조용히 내 살을 파고들었다.
업무가 끝난 자리엔 개운함 대신 기묘한 공백이 앉았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며 어깨를 떨어뜨릴 때, 피로는 ‘양’이 아니라 ‘종류’의 문제로 다가왔다. 내가 뱉은 말들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감각. 그 이질감이 목덜미를 뻣뻣하게 눌렀다.
퇴근길 차창 밖으로 빛이 흐르고, 유리창에 비친 얼굴이 겹친다. 낮의 내가 밤의 나를 밀어내는 시간. 오늘의 말투를 되감다, 스스로를 조금 늦춰 세웠다.
“필요해서 했다.”
그 한 문장만 남기고 나머지는 창밖 어둠 속에 던졌다. 가면을 벗는 일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집으로 향하는 속도 그 자체였다.
현관을 넘는 순간, 공기의 결이 바뀐다. 방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내는 난색의 조명. 소파에 몸을 묻고 고양이의 등을 쓸어내리면,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가빠진 호흡의 박자를 고른다. 낮의 날 선 ‘한 톤 위’는 이곳에 없다. 목소리가 아닌 온도가 기준인 공간. 나는 다시 내 톤으로 돌아온다. 부드럽고, 느리고, 무해한 본연의 소리만 남는다.
일은 끝났고, 나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다.
이 글은 기록의 일부입니다.
같은 톤의 글을 계속 남깁니다.
낮의 판단과 밤의 귀환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