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가 울음으로 변하던 밤

선언이라기보다 비명에 가까운 등교거부

by 서우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아니, 못 가겠어."

한 주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될 월요일을 준비하는 일요일 저녁이었다. 그날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TV프로그램을 보며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 절정을 이루던 그 찬란한 봄밤, 나지막이 떨리던 딸의 목소리만은 선명한 낙인처럼 남아있다. 딸은 기어이 등교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건 선언이라기보다 살려달라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한 내 심정은 '어이없음'이었다.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울린다"며 핑계를 대던 그 성의조차 이제는 보이기 싫다는 건가.


직장인은 직장으로, 학생은 학교로. 나에게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삶의 당연한 '기본값'이었다.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지 않는 이상, 학교라는 문턱은 무조건 넘어야 하는 문이었다. 그런데 고작 친구랑 싸웠다는 이유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중3에 멈춰 서겠다고.


"너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혀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아이의 절벽 같은 표정 앞에서 갈 곳을 잃고 맴돌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춘기 여자아이들 특유의 예민한 기싸움이려니,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깔깔거리며 떡볶이를 먹으러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의 입을 통해 새어 나온 교실의 풍경은 내가 알던 학교가 아니었다.


어제의 단짝그룹에서 배제된 딸의 오늘은 싸늘한 시선, 비아냥 그리고 투명인간 취급을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좁은 교실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도망쳤다고 했다. 차가운 변기뚜껑을 덮고 앉아, 다음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10분이라는 영겁의 시간을 버텼을 아이.


"엄마, 그렇게까지 해서 학교를 꼭 다녀야 해?"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쏟아내는 아이의 말에 내 억장은 무너져 내렸다. 학생이니까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한다는 나의 당위성은 화장실 칸막이 뒤에서 떨고 있던 내 아이의 고독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그날밤, 나는 잠든 아이의 등 뒤에서 무너진 나의 기본값들을 하나씩 주워 모으며 자책했다. 우리가 마주한 이 긴 터널의 끝에 졸업장이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벼랑이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학교 출석일수가 아니라 아이의 숨소리라는 것.


그제야 나는 아이가 그토록 댔던 수많은 핑계들이, 사실은 벼랑 끝에서 내미는 간절한 손길이었음을 깨달았다. 봄꽃이 지고 있었다. 아이의 중학교 3학년도 그렇게 멈춰 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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