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재설계하는 인간

우리가 반복을 멈추는 방식

by 이수염

우리는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의지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 모든 관계가 우리의 노력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인정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더 노력하면, 더 이해하면, 더 버티면 어떤 형태로든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알게 된다. 노력으로도 닿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해로도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 있다는 것을. 그때의 인정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를 다시 보는 방식의 전환에 가깝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 위에 서 있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조건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조건을 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선택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선택을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어떤 방식으로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기로 했고,

같은 방식으로 기대하지 않기로 했고,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은 작았다.

그러나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관계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관계는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변수를 포함한다. 상대의 기질, 반복된 패턴, 말해지지 않은 기대, 그리고 그 사이에 형성된 보이지 않는 균형. 그 안에서 우리는 조정하기 시작했다. 조금 덜 개입하고, 조금 더 물러서고, 필요한 만큼만 머무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다시 배치했다. 그 과정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비슷한 방식으로 실망하게 되고, 익숙한 형태로 어긋나고, 이해했음에도 다시 같은 감정이 올라온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무엇이 남아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쥐고 있는 기대일지도 모른다. 기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정도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이 관계라면 이 정도는 가능하다고, 이 순간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반응은 돌아와야 한다고. 그 기대는 때로는 말보다 먼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가 어긋났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분노이기도 하고, 실망이기도 하고, 어딘가 부당하다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감정의 출발점에는 대개 하나의 전제가 있다.


“이건 이래야 하는데.”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편해진다고. 실제로 기대를 줄이면 당장의 실망은 줄어든다.

상대에게 덜 바라게 되고, 상황에 덜 개입하게 되고,

감정의 진폭도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상태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기대를 낮춘 자리에는 다른 것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리다.

이해가 줄어들고, 관심이 옅어지고, 관계의 밀도가 희미해진다. 우리는 더 이상 실망하지 않지만, 그만큼 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기대를 낮추는 방식은 해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축소시키는 방식이다.

우리는 더 이상 다치지 않지만, 그만큼 덜 살아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대를 버릴 수는 없다. 기대를 낮추는 것 역시 답이 아니다. 남는 것은 하나다. 기대를 다시 설계하는 것.

기대를 재설계한다는 것은 그것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확하게 보는 일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이 관계가 어떤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 지금까지 무엇이 반복되어 왔는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위에 기대를 올려놓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가능하지 않은 것에 기대를 건다. 상대가 아직 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기를 기대하고, 이 관계가 아직 가지지 못한 깊이를 갑자기 가지기를 기대하고,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렇다면 기대 역시 구조 위에 놓여야 한다.


기대가 어긋나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많이 바라서가 아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으로 기대를 만든다. 이 정도면, 이 상황이면, 이 관계라면. 그러나 그 ‘이 정도’는 대개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상대의 기준이 아니고, 관계의 실제 위치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어긋난다. 그리고 그 어긋남을 상대의 문제나 상황의 문제로만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항상 하나가 더 있다.

우리가 놓아둔 기대.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 관계에서 실제로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희망의 일부를 내려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질문은 관계를 오래 남긴다. 가능한 것 위에 세워진 기대는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는 기대는 실망을 줄이고, 실망이 줄어든 자리에 거리대신 지속이 들어온다.


우리는 기대의 위치를 바꾼다. 더 이상 결과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상대가 변할 것이라는 확신 위에 서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과정에 기대를 둔다. 내가 같은 선택을 반복할 수 있을지, 내가 나의 기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내가 조정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이 기대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결과는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위치를 잃지 않는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어쩌면 우리가 반복 속에서 느끼던 피로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기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해서 조금 더 나아진 결과를 기대했고, 조금 더 다른 반응을 기대했고, 조금 더 나은 관계를 기대했다. 그 기대가 틀렸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놓인 위치가 현실과 어긋나 있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기대를 다시 놓는다. 더 높게도, 더 낮게도 아니라, 더 정확하게. 우리는 모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가능한 것만 기대한다. 그 기대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간다. 그 기대 위에서 우리는 덜 흔들리고, 덜 소모되고, 조금 더 안정적으로 머문다. 그리고 그 안정은 무너지지 않는 관계의 형태로 이어진다.


우리는 한계를 인정했고, 우리는 선택을 시작했고, 우리는 관계 속에서 조정했다. 이제 우리는 기대를 다시 놓는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더 많은 기대가 아니라, 더 맞는 기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붙잡고 있는 기대는

정말 가능한 것 위에 놓여 있는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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