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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바다 Mar 18. 2024

새한서점

이번에 새한서점을 들렀다. 글쓰기 모임에서 글감을 위해 들렀으면 한다는 의견에 따라 답사를 하게 된 것이다. 새한서점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시골에 있는 헌책방이다. 나는 영화 <내부자들>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새한서점이 그곳에 나왔다고 한다. 나는 책방, 도서관, 책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다. 그 조용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새한서점은 흡사 절 느낌이었다. 자연 속 한적함이라 할까. 나는 전에 한동안 절에서 묵은 적이 있다. 맞다. 그 느낌과 비슷하다. 절은 자연에 있고, 조용하고, 고요하기까지한데 사람 또한 제법 왕래가 있다. 그렇게 사람이 왕래하지만 조용할 수 있는 이유는 절만의 규칙 덕분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절은 절이며 놀이터가 아니라는 것. 왕래하는 사람들은 이런 룰을 알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반면 새한서점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옛날 한창 공부하던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헌법 속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왜 이걸 굳이 법(명령)으로 보장을 해야만 했을까요?"

새한서점도 마찬가지이다. 책은 취약하며, 수다와 친하지 않다. 책은 책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은 정적이여야 한다. 책이 시장 통에 있다면 금방 찢어지고 헤질 테다.


새한서점 곳곳엔 부탁의 말이 붙어있다. "여기는 출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조용한 책방을 바란다."등의 말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사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가 저기 적혀있는 대로 해야 정도라고?'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규칙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분명 전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새한서점은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과거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세월이 지나는 대로 방치돼 있다. 그나마 과거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상 떠도는 관광 차원의 글들이다.

'아, 그때는 그랬구나.'

그래도 책방이라 그밖의 추측할 수 있는 것들도 보였다. 그곳에서 <내부자들>을 촬영하고 그 후에 주인 할아버지의 아들이 쓴 글이다. 조승우 배우는 싸인을 해줬지만, 이병헌 배우는 싸인을 해준다고 해놓고 그냥 갔다는, 그래서 주인 할아버지가 화가 나셨다는 글도 보인다. 주인 할아버지의 아들은 일러스트 작가라고 한다. 그런 덕분인지 곳곳에 책 또는 노트들을 콜라보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새한서점을 보고 느낀 것은, 세월의 무상함이다. 서점 곳곳엔 왕성했던 한 왕조의 흔적이 보인다. 그것과는 반대로 지금은 고요함으로 묻어진 것 같다. 이는 책 많은 곳의 고용함과는 사뭇 다르다. 책 많은 곳의 고요함은 질서정연함, 정리돼 있음, 체계적임이다.


분명 이곳을 들르고 실망을 한 사람들도 있을 테다. 가령, 정말 '헌 책'을 사려고 한 사람이라든가, 영화 <내부자들>을 보고 온 사람이라든가 말이다. 지금와서 곳곳에 있는 새한서점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고 있다. 나름 갈리는 평들이 제법 있다. 나로서 정말 다행었던 것은, 이곳의 분위기가 세간의 시선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새한서점은 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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