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늘 날엔, 그저 항상 널 그리워할 뿐이지... 노는 날은 아니다.
이번엔 목장을 촬영하러 갔다. 이렇게 농사를 짓는 농부들뿐만 아니라, 나름 생산시설을 갖춘 지역의 생산자들도 촬영을 해야 한다고. 이분들도 1차 생산자로서 음식을 만드니 말이다. 기대가 됐다. 뭔가 소풍 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곳은 젖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있고 체험농까지 하고 있어 체험학습으로도 많이 온다는데, 정말 가기 전날 부푼(?) 꿈에 젖어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비는 멈추지가 않았다. 나는 비가 오는 날에도 나름 그 분위기를 잘 타는 사람이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분위기에 따라 그날의 감성이 충만하다. 하지만 촬영할 때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촬영은 "내"가 아니기 때문.
비가 오면 촬영이 너무 힘들다. 나는 주로 야외를 촬영해야 하는데, 비가 오면 장비들이 비에 맞을까봐 신경이 너무 쓰인다. 게다가 영상에 담기는 풍경은 또 어떤가. 비를 맞아 색채가 더 도드라지는 건 알겠는데, 또 적당히 센치해지는 건 알겠는데, 그건 내가 찍어야 하는 영상이 아니다. 나는 감성보단 인조이 익사이팅(?)으로 승부를 봐야한다. 그러니까, 종합해서 말하자면 오늘 영상은 찍기도 전에 꽝이라 이 말이다.
잘 생각해보니, 다른 날도 있었는데 굳이 비오는 날에 촬영 날짜를 잡은 이유가 뭔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 날짜는 내가 알 수 없는 사정으로 미루다, 미루다 결정된 것이다.
아니 다른 날도 많았는데, 왜 하필 비도 오는 오늘?
목장에 도착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너무 썰렁하다고 해야하나? 아무도 안 계시는 느낌이었다. 오늘 목장은 운영하지 않는 것이 불보듯 뻔했다. 도착하고 나서 바로 연락을 드렸는데, 그쪽에서 잠시만 기달려 달라고 했다. 아마 촬영에 부담을 느껴 잠시 기다리라고 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촬영에 담을 것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잠시만 기달려 달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목장 측과 영상 촬영 이야기가 제대로 오갔던 것 같지 않다.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직접 농가들과 컨택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걸었다. 나는 내가 굳이 컨택을 직접 안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을 할 때마다 이게 걸림돌이 됐다. 영상을 찍으러 가는 목적과 취지를 농가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야하는데, 이걸 주먹구구식으로 단순히 "촬영하겠습니다"하니 농가들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이 목장의 경우 사전에 제품 생산 공정만 찍겠다고 이야기 됐다며 인터뷰, 목장 전체적인 촬영, 1:1 질문들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설명 덕분에 인터뷰는 응해 주신다고 했지만, 그 때문에 인력이 부족해 급하게 휴무인 직원을 부르게 됐다. 아, 이러면 내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실 순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생각했던 영상을 찍을 분위기도 아니고...
그냥 제일 급한 인터뷰 영상만 따고 그 이후의 영상은 다음에 와서 찍어야지 뭐...
오늘 비가 오더라도,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있더라도 어쨌든 계획한 대로 움직인다면 문제가 없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 하나는, 집에 캐주얼한 신발이 없어 캔버스화를 신었는데 그 덕분에 신발과 양말이 비로 다 젖은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가 와도 어느 정도 예쁘게 찍으면 될 것을 생각했지만 아예 그런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인터뷰는 흔쾌히 수락을 해주셔서 목장에서 괜찮은 실내에 들어가 인터뷰 준비를 했다. 다행히 그 목장에는 카페도 운영 중이라 제법 예쁜 장소에서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내가 간 날은 카페 휴무일이었다. 덕분에 그 안에서 촬영을 했으니 행운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카페 운영 중인 것을 못 찍었으니 불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카페에 들어가 목장주 분께 내가 온 애초의 취지를 설명해드렸다. 그랬더니, 그건 자신의 후계농인 아들과 컨택을 해서 다시 날짜를 잡는 게 좋겠다고. 그래도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게 잘 풀렸다. 목장의 제품과 커피까지 얻어먹었다. 게다가 그분도 목장을 배경으로 한 인터뷰 등을 한 두번 찍어본 것이 아니라서 능숙하게 말씀해주셨다. 덕분에 인터뷰는 부드럽게 마칠 수 있었다.
이리저리, 이곳저곳 예상치 못한 일들 투성이었지만 어찌됐든 인터뷰는 찍었다. 다음으로는 좀 더 스토리를 보강해서 다시 방문하면 된다. 이번에 찾아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생산 과정을 촬영하는 건 조금 힘들 것 같다. 영상의 주제는 일관성 있게 만들고 싶지만 상황이나 여건상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느꼈다. 다른 스토리를 준비해야겠다. 오히려 내게 시간이 좀 더 주어진 게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미흡했던 것들을 좀 더 강구하자고.
* 중요한 것! (내가 부족한 것)
1. 상황에 적합한 스토리라인 생각할 것!
2. 인터뷰이와의 컨택을 잘 할 것!
3.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 조사(이를 보통 디깅이라 하나보다)를 철저히 할 것!
4. 질문을 핵심만 딱! 딱! 조리있게 말할 것!
5. 분위기를 잘 유도할 나만의 방법을 찾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