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하나가 불러온 나비효과

by 이재원

주말, 팀 공유 카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Autoclave의 진공펌프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펌프가 트립이 발생했고, 재가동을 시도하자 펌프는 돌지 않고, 모터에서 연기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팀 담당자와 생산팀 담당자는 즉시 동력을 차단하고 가동을 중지했다.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전기 설비에서 연기는 ‘징후’가 아니라 ‘사고 직전의 경고’이기 때문이다. 진행되던 공정은 임시로 상수를 계속 흘리는 방식으로 냉각을 유지하며 공정을 마치기로 했다. 효율은 떨어져도, 품질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임시 조치이다.


월요일 출근 후 그런데 생산팀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건조용 고진공 펌프가 과열 알람으로 정지되었다는 연락이었다. 화요일부터 건조 계획이 있어 시험가동 중이었다고 한다. ‘주말 사건의 여파가 또 다른 곳으로 번진 걸까’ 하는 긴장감이 스쳤다.


장비파트 담당자가 현장을 확인한 결론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토요일에 Autoclave 진공펌프용 냉각수 순환펌프 전원을 Off 시킬 때, 같은 OP 판넬(Operation Panel or Local Control Panel)내에 함께 있는 건조용 고진공펌프 냉각수 순환펌프 스위치까지 같이 Off 시켜버린 것이다. 월요일에 고진공펌프는 정상 가동되었지만, 순환펌프는 멈춰 있었고, 냉각이 끊긴 펌프는 결국 과열로 경고를 울렸다.


사고는 종종 거창한 기술 결함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의 손이 만들어낸 휴먼에러에서 시작된다.
스위치 두 개가 나란히 있고, 시각적으로 구분이 어렵고, 주말의 긴박한 상황에서 ‘동력 차단’이라는 목표가 내려지면, 손은 종종 “한 번에 정리”를 선택한다. 그것이 다음날의 과열알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즉시 조치 방향을 정했다. OP 판넬에서 두 펌프 스위치를 시각적으로 분리해 혼동을 원천 차단하기로 하고, 라벨만 붙이는 수준이 아닌 위치와 표시, 색상, 가드, 텍스트까지 포함해 ‘누가 봐도 다른 장비의 스위치’가 되도록 했다.

본질적 안전설계에 있어 처음부터 잘못된 설계를 적용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고는 처음부터 없앨 수 있었던 것이다.


생산팀에 확인하니 월요일에는 두 시스템 모두 가동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먼저 Autoclave 진공펌프용 냉각수 순환펌프부터 점검에 들어갔다. 전원을 차단하고 LOTO를 설치한 뒤 결선을 분리하였다. 펌프를 손으로 돌려봐도 회전 자체가 원활하지 않았다. 펌프를 분해했다. 임펠러와 씰은 큰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모터 코일과 베어링은 이미 육안으로 보기에도 손상되어 있었다. 베어링이 무너지며 코일까지 소손된 것으로 보였다. 샤프트의 씰 O-ring 자리에는 홈도 파여 있었다. 소손된 코일과 베어링은 교체하기로 하고, 샤프트의 홈 자국은 레이저 용접으로 복구를 진행하기로 하고, 펌프까지 함께 유지보수 한 후 이틀뒤에 입고/재설치하기로 하였다. 일정을 곧바로 생산팀과 공유했다. ‘장비 수리’와 ‘생산 계획’은 항상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이제 건조용 고진공펌프를 확인할 차례다.
순환펌프 전원을 다시 투입하고 1차 냉각수 순환과 정상 공급 온도를 확인한 뒤 고진공펌프를 가동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온도 High 알람이 울렸다.

이 펌프의 냉각 구조는 조금 복잡하다. 1차 냉각수가 펌프 외부 열교환기로 들어가고, 그 열교환기 내부에는 2차 냉각수(EG : Etylene glecol)가 순환하며 1차와 열교환을 하고, 그 2차 냉각이 펌프 내부를 식히는 구조다. 결국 진짜 주역은 ‘2차 EG 루프’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과열이었다. 무리하게 만지거나 EG를 보충하지 않고, 장비가 식은 오후에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오후에 EG를 준비해 2차 냉각수를 보충했는데, 결과는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2차 냉각수가 거의 ‘없는 것처럼’ 증발해 있었다. 냉각수 없이 엔진을 돌린 경우다.
EG를 가득 채우고, 혹시 과열로 씰링재가 손상되어 누유가 발생 할 수 있는 경우를 확인하기 위해 하룻밤을 그대로 방치하였다.

다음 날, 다행히 EG가 새거나 줄어든 흔적은 없다. 1차 냉각수와 2차 EG의 흐름 상태를 다시 확인한 뒤 펌프를 재가동했다. 소음도, 작동 온도도, 모터 암페어도 정상. 큰 고장은 피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숙제를 발견했다.


이 고진공펌프 냉각수 시스템은 최근 판형 열교환기를 적용해 환경과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설비였다. 좋은 개선이었다. 하지만 “흐름이 없을 때 장비에 알람을 발생시켜 운전자가 즉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빠뜨리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장비가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체크 포인트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그 빈틈을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사건은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준다.
OP 판넬의 휴먼에러 개선, 냉각수 유량 스위치(또는 DP 스위치) 연동과 경보(장비업체와 협의하기로 함), 그리고 무엇보다 주말이나 야간의 “정지 조치”가 다른 설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개선해야할 목록이 된다.


완벽한 공장은 없다. 하지만 더 나은 공장은 분명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늘 ‘기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시작된다.

이번 주말의 사건은 스위치 하나가 냉각수를 멈추게 하고, 냉각수 하나가 펌프를 과열시키며, 과열이 결국 생산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경험하며 기본으로 돌아가야 함을 되새기게 된다.


[안전을 방지(예방) 하기 위한 방법 : 사고 통제]

제거(elimination) → 대체(substitution) → 공학적방법(engineering controls) → 관리적방법(administrative controls) → 개인보호구(PPE)


[본질적 안전설계를 위한 방법 : 사고 제거]

제거(elimination) → 대체(substitution) → 최소화(minimize) → 단순화(simpl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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