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휴가의 무게

흐르지 않는 물이 가장 먼저 얼어붙는다.

by 이재원

회사는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리프레시 휴가에 들어간다.
누군가에게는 기다리던 쉼이지만, 설비를 맡고 있는 우리 팀에게 겨울 휴가는 늘 양면적이다. 마음 한편이 가벼워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은 자연스럽게 긴장을 한다. 여름처럼 대부분의 설비를 멈추고 스팀 사용량도 최소로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겨울은 그렇지 않다. 전기요금은 비싸지고, 스팀은 오히려 더 필요해진다. 생산이 없다는 사실이 에너지 사용량 절감에 조금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겨울의 설비는 멈춘다고 해서 안전해지지 않는다.


오늘, 어김없이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뭘까?” 하는 궁금증이 오히려 생겼다. 직업병인가 보다.
“공장 뒤편 파이프랙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화 너머의 짧은 설명만으로도 어떤 배관일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현장에 도착하자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PFW 시스템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배관, 그 배관과 T자로 연결된 밸브에서 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동파였다. 이 배관의 메인 라인은 계속 냉각수가 흐르지만, 가지관 쪽은 흐름이 없다. 며칠 전 한파 속에서, 보온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결부에 고여 있던 물이 얼었다가, 오늘 상온 날씨에 녹으며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동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지하에 있는 냉각수 탱크를 보니 상수가 계속 보충되고 있었지만, 바닥에는 물이 찰랑거렸다. 일정량이 모이면 펌프가 돌고, 그때마다 동파된 부위에서 물이 꿀렁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이 상태로 두면 물난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영하의 날씨가 된다면 겨울왕국을 만들 것이다.


우선 지하 냉각수 펌프를 정지시키고, 물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펌프 전단 밸브를 닫았다. 그리고 연휴 기간 동안 다시 한파가 예고되어 있었기에, 펌프 후단의 압력계 드레인 밸브를 열어 내부에 남아 있는 물을 최대한 빼내어 2차 동파를 예방하고자 했다. 눈앞의 물난리는 일단 잠잠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PFW 시스템은 연휴에도 멈출 수 없다. 생산이 없더라도 PFW는 탱크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가동된다. 냉각수가 없으면 고온 알람으로 시스템이 셧다운 되고, 이는 단순한 설비 정지를 넘어 GMP 일탈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생산된 PFW는 생산동 루프를 순환하며 TOC 측정을 위해 일부가 계속 소비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사용처가 없어도 소모된 용량을 채우기 위해 다시 생산 사이클이 돌아간다.


파이프렉의 높은 위치에서 동파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리고 야간에 냉각수 배관을 즉시 복구하고 시스템을 정상 가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연휴 동안 시스템을 멈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리하게 재가동할 수도 없는 상황. 참 난감한 순간이다.


설비 담당자와 통화를 하면서 시스템 실 내부에서 의외의 해답을 찾았다.
PFW 시스템은 원수로 PW를 사용한다. 이를 위해 PFW실에는 PW 루프와 Using point가 연결되어 있고, 자동 밸브를 통해 PW가 공급된다. 이 루프에는 샘플 측정을 위한 샘플링 밸브도 설치되어 있다. 샘플링 밸브.

연휴 기간 동안 임시로, 이 PW를 냉각수로 사용하기로 했다. 냉각수는 순환 방식이 아니라 계속 배출되는 구조다. 그리고 PW는 연중 약 25℃로 유지되기 때문에 냉각수로 쓰기에도 온도가 적당하다. 유량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시스템이 셧다운 될 만큼 부족하지도 않았다. 생산이 없는 기간이기에 PW 사용량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냉각수 인입 측의 스페어 노즐과 PW 샘플링 밸브를 연결해 임시 배관을 구성했다. 그렇게 PFW 시스템은 연휴를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췄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처음 물이 솟구치던 밸브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보온은 되어 있었지만, 밸브 손잡이 쪽은 외부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마 이 노출된 손잡이를 통해 전달된 냉기가 밸브 내부와 정체된 물을 얼렸을 것이다. 겨울을 준비하며 보온 상태를 점검하고, 열선도 확인하고, 가동되지 않는 냉각수와 상수 구간의 물을 빼낸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기억이나 담당자의 경험, 순간적인 판단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계절별로 점검해야 할 항목을 체계적인 체크리스트로 만들고, 누구나 같은 기준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는 것을 이 순간 다시 다짐하게 된다.


흐르지 않는 물이 가장 먼저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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