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1.
7+4를 머릿속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아빠는 분가를 결심했다. 아빠와 엄마는 시간만 나면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동네의 낯선 아파트 이곳저곳을 돌며 “여긴 어때?” 물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몇 날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그해의 첫눈이 내릴 때 쯤 엄마는 슬며시 “새 집에 가보지 않을래? 페인트칠이 막 끝났어.” 말씀하셨다. 그렇게 아빠가 운전하는 자주색 프라이드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처음 보는 낯선 동네. 아니, 동네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한적하고 조용한 곳. 도로 위에서 엄마가 가리킨 곳은 어느 산 밑이었다. 실개천을 하나 건너 멀리 보이는 산 밑에 나란히 지어진 세 채의 집. 그중에서도 길이 끝나는 가장 끝 집에 다다라서야 우리 차는 멈춰 섰다.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 될 거야. 화장실은 아직 짓고 있어.”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살던 우리 가족은 어느 날 외딴섬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귀촌 비슷한 것을 꿈꾸던 아빠와 아빠가 하는 일이라면 이유가 있을 거라던 엄마의 묘한 합작품이었다.
그 집은 흠이 많은 집이었다. 그 집의 가장 큰 흠은 그때 나를 이루던 세상과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집은 너무 멀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집에서도, 피아노 학원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원래 집에서도. 치킨이나 자장면이 배달 오기에도 멀었고,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기에도 멀었다.
서울의 학원가에서는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에 맞춰 부모들이 뱅글뱅글 로터리를 돌고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반대로 아빠의 출퇴근 시간에 맞춘 샌딩과 픽업이 이루어졌다. 그 집에서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교는 한 곳도 없었고 어차피 차를 타고 다닐 거라면 다니던 학교에 계속해서 다니겠다는 나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전학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매일 아침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학원에서 가장 빨리 집에 가는 학생도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네 식구가 한 팀이 되어서 움직였다. 아침에 모두 함께 출근하고 저녁에 모두 함께 퇴근하는 한 팀. 아침저녁으로 차 안에서는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매일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사연을 들으며 네 식구가 함께 깔깔댔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도 해가 떠 있는 여름날이면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네 논밭을 쏘다녔다. 경운기만이 탈탈 지나가는 논둑을 따라 달리며 어떤 꽃을 꺾으면 노란 물이 드는지, 어떤 이파리에서 화한 향이 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집의 또 다른 흠은 화장실이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 그 집 안에는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외벽 한쪽을 허물고 바깥쪽으로 없던 공간을 만들었다. 덕분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실을 지나는 문을 하나 더 열어야 했다. 여름에는 계단실부터 화장실까지 집 안의 다른 어떤 곳보다 시원한 장소였지만 찬 공기가 가득 차는 계절이 오면 세수를 하는 일조차 결심이 필요했다. 난방을 위해 아빠가 들여온 것은 물을 데워서 온기를 만드는 오래된 방식의 라디에이터였다. 그 라디에이터를 데우기 위해 처음에는 나무를 태웠고 그다음에는 연탄을 태웠으며 전기로 작동하는 히터는 가장 나중의 기억이다. 그 집에 사는 10년은 난방의 역사를 몸소 겪은 시간이었다. 보통은 장작을 사서 쌓아두었었는데 가끔은 뒷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면서 땔감을 주워 내려온 기억도 있다. 옷을 대충 챙겨입고 불을 때는 화로를 구경하러 나가면 가끔 엄마가 고구마나 감자 같은 것을 은박지에 싸서 내오곤 하셨다. 고구마의 달큰한 냄새와 무릎을 데워준 화롯가의 기억 때문에 나는 여지껏 캠핑 같은 것을 취미로 두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 집은 흠이 많았다. 산 밑에 있어 모기는 물론 갖가지 벌레들이 방문하는 집이었고, 봄 여름이면 온 마당이 잡초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벼가 자라는 시기에는 가로등도 모조리 꺼 버려 고요만 남는 그런 동네의 그런 집.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계절의 곁을 배웠다. 그것은 길가의 꽃을 만지며 자랐다는 뜻이고, 벼가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는 뜻이며 계절이 키우는 대로 마음을 키웠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안다. 그 시간 동안 집의 흠을 메운 건 계절과 온기, 사랑이었음을.
바람이 스며들고 빛이 머물던 그 시간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웠음을.
흠이 많았던 그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