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2025.11.16.

by 새순

남해(재잘거릴 喃, 함께 偕)


-고양이 남해는 남해에서 주워 와 이름이 남해가 되었다. 나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한자 뜻을 바꾸어 주었다. 남해의 재잘거림이 오래도록 나와 함께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



창가에 앉은 고양이에게서는 햇빛의 냄새가 난다. 보송한 털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시면 계절의 빛과 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고양이에게서는 대체로 햇빛에 말린 따뜻하고 깨끗한 먼지 냄새가 나지만 공간에 따라서 다른 냄새도 맡을 수 있다. 막 식사를 마친 고양이에게서는 사료 냄새가 난다. 함께 사는 인간의 저녁 식사가 파스타였다면 그날 고양이에게서는 기름에 익어가는 고소한 마늘 향이 날 것이다. 방금 세탁을 마친 이불 위에 앉은 고양이에게서는 건조기에서 막 꺼낸 빨랫감의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고양이 털은 공간이 가진 향을 그대로 흡수한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금세 다시 깨끗한 먼지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고양이와 나는 2019년에 처음 만났다. 사실은 고양이를 만나기 전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무서워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얼마나 큰 책임과 마음이 필요한 일인지를 잘 모르고,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지금은 나에게서 고양이를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양이는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하지 못하게 된 것들도 있다. 밤에 고양이 소리에 깨지 않고 잠을 자는 것, 흰 털이 붙지 않은 검은색 옷을 입는 것, 고양이 모래가 없는 마룻바닥을 걷는 것, 걱정을 하지 않고 집을 비우거나 긴 여행을 가는 것 같은. 그러나 고양이와 함께 살아서 눈물나게 좋은 순간도 있다. 고양이가 찹찹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시면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하던 일을 모두 멈춘다. 고양이는 이불은 절대 덮지 않지만 인간의 다리 사이에서 잠드는 습관이 있다.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달아나 버리기 때문에 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고양이의 따끈하고 말랑한, 귀여운 무게는 불편한 자세쯤은 참을 수 있게 한다. 롱다리 고양이는 꾹꾹이도 열심히 한다. 고양이가 발바닥으로 이불을 꾹꾹 누르며 갸르릉 소리를 낼 때 세상의 그 어떤 소리를 듣는 것보다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

고양이를 떠올릴 때 대가 없는 사랑을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고양이가 내게 주는 위안과 따뜻함이 더 큰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치르고 있는 대가라 부를 만한 것은 고양이를 걱정하는 마음뿐일 것이다.


나는 고양이의

가지런히 모은 하얗고 동그란 발과

신이 나면 분홍빛이 더 짙어지는 촉촉한 코와

보석 같은 연두빛 눈동자,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는 목소리,

그때 보이는 하얗고 자그마한 이빨 같은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고양이와 내가 함께할 시간이 이미 함께 지낸 시간보다 길 것이라 언제나 믿으면서도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을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준비한다.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적게 슬퍼하고 덜 후회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빠진 수염을 발견할 때면 열심히 주워놓고 하얗게 빠진 털도 줍고 발톱도 주워 든다. 고양이를 많이 찍는다. 장난감을 쫓아 움직이는 모습, 물을 마시고 밥을 먹는 모습, 예쁜 모습, 못생기고 웃긴 모습을 남긴다.

시간이 흘러 나 홀로 남은 공간에 고양이가 남기고 갈 향을 생각한다. 창가의 계절을 담은 햇빛 냄새, 자주 앉아 있던 쿠션의 따뜻한 냄새, 물을 마시던 그릇 주변에 남은 습기의 냄새를. 어디선가 나타난 털을 손에 들고 슬퍼할 나를 떠올리면 나보다 빠른 시간을 사는 고양이가 서글프다. 그러다 문득 빤히 나를 쳐다보던 고양이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애정을 표현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울게 된다.


오후 두 시.

고양이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아래 둥글게 앉아 몸을 굽고 있다. 지금 고양이에게서는 가을볕에 잘 마른 낙엽의 냄새가 날 것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가을의 냄새를 맡으러 고양이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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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일러를 켜 두었더니 고양이는 방바닥에 찹쌀떡처럼

녹아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일곱 살 고양이는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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