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을 용기

2025.12.22.

by 새순

나는 선을 긋는 사람이다.

“선 넘지 마.”

나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가끔, 아니 사실은 꽤 자주 말하고는 한다. 선 넘지 말라고. 선은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그 말은 대개 질서와 배려를 의미하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세계는 선이 명확한 곳이었고, 나 역시 그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것,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정한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것. 나는 선을 지키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대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 믿었다.


누구보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선 안에 살던 내가, 가끔은 다른 선을 마주한다.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 선. 넘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선.


주변에는 기꺼이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뛰어들고, 내가 상식이라 믿어온 것들의 틀을 깨부수며 나와 주변을 놀라게 한다. 안주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어 본 적 없는 풍경을 손에 넣는 사람들. 그들을 볼 때면 마음이 조용히 흔들린다. 그것은 단순한 동경과 응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지독한 질투에 가까운 것이리라.


나는 테두리의 안쪽에 서 있는 데에 익숙하다. 기준을 알고, 규칙을 이해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정확히 인식하는 일은 나를 오래 지켜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선은 나를 이 자리에서 멈춰 세우기도 했다. 더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가 되어주었고, 시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가 되어주었다.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내게, 선은 나를 안심시키고 다독이며 상처받을 기회도 없애주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지켜온 견고한 선들이 나의 세상을 얼마나 안전하게, 그러나 얼마나 좁게 만들었는지를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실감한다.


어떤 선은 넘어보지 않으면 영영 그 너머의 풍경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여전히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은 틀리지 않다. 다만 덧붙여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타인과 나를 위해 지켜야 할 선도 있지만, 오로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용기를 내 넘어야 할 선도 있다고.

나는 여전히 한 발을 들었다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하면서 아직 그 선 앞에 서 있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는 순간 찾아올 방황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있다는 건 아직 움직일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멈추어 서 있기보다 선 밖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되고 싶다. 헤매다 마주하게 될, 나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을 그 낯선 풍경을 오롯이 쥐어보고 싶기에 오늘도 그 선 앞에 서서, 조용히 선 넘을 용기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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