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네

by 김인주

은자네

김인주

내가 춘성군 신북면 신동국민학교 다닐 때 은자네 집은 우리 집과 거의 붙어 있었다
은자는 같은 학년이었지만 같은 반도 아니고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은자네 부엌과 우리 부엌은 얇은 송판 칸막이를 두고 서로 붙어 있었는데 성기성기 뚫려 있어서 은자네 부엌에서 물펌프가 있는 손바닥만 한 우리 집 마당이 틈새 사이로 보였다 은자네도 우리 집 펌프를 같이 썼다
초가지붕에서 루핑 슬레이트로 지붕을 같이 바꿔 나갔다 볏짚으로 이은 썩은 초가지붕을 걷어 내는 날 수없이 많은 노래기와 애벌레들이 썩은 볏짚에서 나왔다 루핑 슬레이트 지붕은 비가 오면 빗소리가 전해져 방안까지 잘 들렸다 불규칙한 빗소리는 나를 음치는 아닌 박치로 만들었다

은자네 엄마와 우리 엄마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울 엄마는 낮에 장사를 다니셨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들도 많이 친하게 지낸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서로 다 아는 정도였다

은자네 아버지는 집을 짓는 건축일을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평상시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이 아주 가끔 집에 오곤 하였다 나이 들어서야 집으로 들어와 살았다

어느 날 은자네 집 애기가 3일을 끊임없이 울었다 무슨 이유인지도 몰랐는데 가보니 코가 마른 코 젖은 코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죽었다 은자 큰오빠가 야밤중에 지게에 지고 나가 어딘가에 돌로 작은 무덤을 만들어 주고 왔다 했다 은자네 엄마 우는 소리가 며칠 동안 우리 집까지 크게 들렀다 은자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때쯤인가 국민학교 동창회가 열렸다 우리 집이 세 들어 살았던 주인집에 같은 학년 여학생이었던 춘화와 바깥동네 한약방집 딸 박영희도 나왔다

춘화는 주인집 딸이였는데 4학년 때 같은 반 김순자 선생님반이었다 가을운동회 준비로 리코더를 불며 행진을 하는데 남자도 반바지에 파란색 타이스를 신으라 했다 우리 엄마가 아마도 주인집 아주머니인 춘화네 엄마께 부탁하여 타이쓰를 빌려 온 기억이 난다 난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춘화네 집에 월세 살 때 동생이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대야에 따뜻한 물을 준비하여 직접 동생을 받고 목욕시키고 탯줄을 자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해 전기가 집에 들어왔는데 그 아이가 남동생인지 여동생인지는 얼핏 생각이 안 난다

동창회에 음식점 하는 복성원집 딸 차영희는 안 나왔고 안동네 사는 김영희는 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학교 때 춘성군 글짓기대회 같이 나가던 김영희가 나를 좋아했다고 들렸다 그런데 나는 김영희와 친하기는 했지만 차영희를 더 좋아했다 서로 화살 작대기가 비켜나갔다 그래도 김영희는 예뻤고 웃을 때 보조개가 생겼다

김영희와 몇몇 여자애들이 은자네 집에 모였다고 기억을 얘기했다 어떤 여자애들이 몇 명이나 모였는지는 모른다 그때 은자네 부엌을 통해 우리 집 마당에 나와 있던 나를 훔쳐보곤 하였다고 한다 은자는 국민학교까지만 졸업한 거 같다 이후에는 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를 좋아했다고 하던 김영희는 운동선수를 만나 연애를 한다고 들었고 그 후 목사님을 만나 결혼하여 지금 인천에서 잘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한 차영희는 얼굴이 작고 말이 많지 않았다 5학년 때인가 내가 반장일 때 부반장을 하였다 동창회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집이 식당을 하였는데 잘 살았다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때 서울로 갔고 그 이후 외국으로 이민 가 산다고 들었다 그때 복성원 식당집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우리 집과 은자네집은 남의 땅에 지어진 무허가 건물이었다 땅주인이 땅을 비워 줄 것을 요구하여 지금은 집은 없어지고 텃밭이 되어 고추 깻잎 가지 상추 등이 심어져 있다

1970년에 졸업한 국민학교 동창들은 남자 한 반 여자 두 반이 졸업하여 160여 명 정도였다 내가 오래전에 신동초등학교금조봉이라는 이름으로 단톡방을 만들었다 55명이 있다 현재 해외여행 동행할 사람을 모으고 있다 여섯 명 정도가 동참한다고 올렸다

나의 자랑스러운 초등학생 친구들이 고향 떠나 대전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언제나 보고 싶고
같이 세월을 보내줘서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들의 동심과 우정은 터럭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얼굴에 줄금이 그어졌고 몸이 앞으로 구부정해졌을 뿐이다 신동학교 친구들아 나를 친구라 불러줘서 행복하다 평생 고비마다 위기에서 나를 지탱하게 해 준 것은 너희들과 같이 가졌던 꿈 때문이었다
이제 조용히 가더라도 여한이 없다

나의 현재는 그때 친구들과 고향산천 나무 풀 북한강 장개울의 붕어 피라미 개구리 하늘 구름을 올려 보던 지내리 연못 뚝빵이 만들어 주었다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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