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과 교권에 관하여
교권이 추락하고 있는 건 오늘내일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 사건들을 뉴스로 접했다. 말썽을 부리는 청소년과 시달리는 교사, 그리고 극성인 부모 같은 모습들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체벌의 금지를 꼽기도 한다. 무조건 체벌을 반대하는 건 잘못된 것이며 어쩔 때는 체벌이 아동의 훈육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중에는 체벌이 관습화되었던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가 대다수다. 즉 체벌을 경험해서 그것을 자기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체벌을 금지한 세대가 역설적으로 체벌을 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사람의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교육환경이 바뀐 탓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체벌을 반대해 왔던 쪽과 찬성해 왔던 쪽이 서로 다른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충남 홍성의 중학교에서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교단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영상을 찍는 등 수업을 방해했던 사건이 있었다. 대중들은, 특히 체벌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교권이 이 정도로 심각하게 추락한 것에 두 가지를 원인으로 주목한다.
첫째, 극성 학부모의 수가 증가했다. 이는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에서 이런 극성 학부모를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부르는데 이로 인하여 교사가 충원되지 않는 등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둘째로는 체벌이 금지된 것 자체에 주목한다. 과거에 행해졌던 체벌이 잘못되었던 것은 맞지만 체벌 자체가 가지는 효과는 무시된 체 무턱대고 금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이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체벌 없이 훈계하려면 학생을 진심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리고 이건 교사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 또한 같은 정도로 공을 들여야만 한다. 그에 비해 체벌은 간편하다. 그리고 효과 또한 확실하다. 어찌 되었든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말을 들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이 바로 체벌이다.
그러나 단점 또한 여기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점이 체벌은 어디까지나 아이를 자리에 앉히는 '수단'에,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만 사용해야 하는 최후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리에 앉힌 다음 왜 자신이 체벌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아이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인식시켜 주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뒷작업이 반드시 실행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사의 본질적인 역할인 아이를 바르게 교육시키는 것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에 있는 것이지 누군가가 때릴까 봐 두려워서 하게 되는 게 좋은 교육방식은 아니지 않을까?
또 다른 문제점은 사람의 '감정'에 있다. 체벌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 중에 하나는 감정이 실린 체벌과 훈육을 위해 한 체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체벌을 하는데에 사람의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체벌을 당하는 학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나 경험으로 인하여 체벌을 행하는 사람의 편견이 체벌을 시도하는 것 자체나 그 강도를 조절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보면 이를 잘 확인해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다른 배심원들을 무죄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점점 무죄로 바뀌는 상황에서 마지막 한 명이 끝까지 반대하는 난항에 부딪힌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반대했던 이유가 밝혀지는데 그것은 가족을 살해한 소년에게서 싸우고 집을 나간 자신의 아들의 모습을 투영했기 때문이었다.
체벌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동물적인 방어기조뿐만 아니라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본능에 더 가깝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체벌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필요에 따라서 체벌은 필요하다. 아이가 설득의 자리에 앉는 것조차 거부하는 그런 상황에서 특히나 체벌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체벌이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조차 체벌은 부작용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강압적인 설득이라는 부정적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벌을 하기 위해서는 체벌을 하기 전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왜 자신이 지금 체벌을 해야만 하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체벌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왜 자신이 체벌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학생이 왜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를 들어보는, 기나긴 설득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또한 그것은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똑같이 수행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네이버블로그에서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하였습니다.)
너무 사적인 에디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