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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Oct 12. 2022

응급실에서 보호자 역할이란

  그날은 우리 고양이 목욕시키는 걸 도와주기로 한 날이다. 약속 시간이 되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빨리 와달라는 다급한 목소리. 아픈 목소리다.  


우려했던 대로 연휴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응급실에 간다. 엄마는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울렁거린다더니 집에서부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토하면서라도 빨리 가야 해. 비닐봉지를 챙겨 남편 차에 엄마를 태웠다. 가면서도 두 번이나 토했다. 먹은 게 없어서 나오는 건 투명한 액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한 손으로는 엄마의 등을 두드리며 한 손으로는 지갑을 찾는다. 내 지갑 에는 작은 종이가 들어있는데 어느 응급실이든 가면 보여주려고 가지고 다니는 리스트다. 그동안 엄마가 수술했던 이력과 복용 중인 약. 먹으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 이름을 써놨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머릿속을 빠르게 비운다. 추석부터 있었던 히스토리를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한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최대한 빨리 팩트만 중요한 것 위주로. 이번에는 정리가 잘 안 됐다. 모든 게 꼬여있었다.


엄마랑 통화한 시간, 카톡 한 내역들을 훑으며 아침은 몇 시에 먹었는지 몇 시부터 아팠는지 증상들을 정리했다. 이런 세세한 정보들이 원인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베테랑 보호자다.


  우선은 명치 통증 때문에 왔고요, 2시부터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다고 했어요. 3시경에 집에서 한 번, 오는 길 두 번 토했고요. 아침은 10시경에 죽 세 숟가락 정도 먹었어요. 허리디스크 염증 때문에 소염진통제를 2주 정도 복용했는데 4-5일 전부터 명치가 아프다고 했어요. 디스크 수술은 5년 전에 했고, 몇 주전 mri 찍었는데 재발은 아니라고 진단받았고요.


그 외에도 저희 엄마 수술은 이렇게 하셨는데요. 이 종이를 봐주세요. 명치가 아픈 건 평생 그랬어요. 담도에 결석이 생겨서 시술했던 이력도 있고요. 이 병원 ○○○ 교수님 예약일자까지 기다릴 수 없이 통증이 심했고요. 그래서 어제 급한 대로 동네 병원에서 ct 촬영해보려고 갔다가 조영제 넣는데 혈관이 터졌어요. 


그래서 팔이 이렇게 부어있고요. 어제 터졌는데 오늘 조영제 또 넣어도 이상 없나요? 혈관이 워낙 약해서 혈관 찾느라 주사를 여러 번 찔러서 팔이 이렇게 멍 투성이에요. 잘 좀 찾아주세요 부탁드려요.


환자는 아프기도 바쁘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 기억해낼 수 도 없고 말할 정신도 없다. 히스토리를 설명하는 건 예전부터 내 몫이었다. 정확한 정보 전달을 해야 알맞은 응급처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과정이다. 꼭 말해야 할 것들을 말하고 빠짐없이 질문한다. 보호자 말에 주사가 바뀌고 선생님이 바뀐다.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엄마를 덜 아프게 하기 위해서. 


응급실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접수부터 각종 기본검사를 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더욱 응급한 환자 순서에 밀려 기다린다. 응급실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의료진에게 증상 설명하기를 반복한다. 또 기다린다. 또 설명한다. 또 종이를 보여준다. 종이를 본 선생님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꼼꼼하다며 놀라는 사람과 이렇게 가지고 다니는 거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 나는 그저 진화한 사람일 뿐인데.


세 번의 주사 바늘 끝에 엄마는 두 번째 손가락 혈관을 통해 겨우 수액을 맞는다. 코로나가 생긴 후 보호자는 한 명밖에 들어올 수 없다. 고달픈 일이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겠다는 남편에게 5시간은 걸릴 거라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오후 4시 반에 누웠으니 밤 9시에는 집에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딱딱한 보호자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이 커다란 에피소드일까. 연휴 끝나면 출근해서 ' 연휴  응급실 다녀왔잖아. 정말 깜짝 놀랐어' 하면서 말할 특별한 하루 일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일이 나한테는 왜 이렇게 흔한 지. 나는 평일 퇴근 후 새벽에도, 흔한 공휴일 아침에도, 어떤 일요일 밤에도 응급실에 있었는데. 이 응급실뿐만 아니라 A병원도 B병원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도 오늘이 손에 꼽는 특별한 날이었음 싶어서. 


 우스운 건 응급실에 도착해 혈관을 찾고 나면 마음이 조금 낫다는 거였다. 진짜 웃기지. 무슨 일이 생기면 부를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잡아둔 일정을 앞두고 마음 졸이고 병원 찾고 회사에서 집까지 뛰어가는 일들에 비하면 병원에 있는 쪽이 훨씬 나았다.


그냥 그런 생각들을 하며 시계 한번, 엄마 얼굴 한번, 링거 한 번씩 바라보고는 했다. 엄마는 계속 아파했다. 그럼 또 데스크로 뛰어간다. 선생님 죄송한데 엄마가 너무 아파해서요. 어떻게 빨리 좀 안 될까요. 


CT는 응급실에서 찍었다. 들어가기 전까지 내 앞에 나타난 5명의 선생님에게 바로 '어제' 조영제 넣다가 혈관이 터졌다면서 강조했다. 응급실은 너무도 정신없기 때문에 방금 전달한 의견이 최종적으로 CT 찍는 선생님한테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다. 중요한 건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된다. 


CT촬영실 앞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또 안 터지게 해 주세요. 이제는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를 기도를 했다. 


다행히 사고 없이 끝나고 엄마가 나왔다. 안도의 한숨 한 번.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말하고는 세면대에서 손을 닦았다.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마른침과 함께 급하게 삼켜버렸다. 아직 울 때가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이 모든 에피소드가 끝나면 울자.


그 후에도 선생님이 두 어번 바뀌어 왔다 가고, 주사를 바꾸고, 기다리는 동안 시계는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배터리 닳을까 걱정되어 꺼내지도 않은 내 전화기는 20퍼센트가 남아 있었다. 배터리 잔량이 내 정신력 같네. 그럴 만도 하지 벌써 9시간이 지났는데. 


남편에게 새벽 1시 정도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남편은 바로 달려오겠다고 했다. 그 메시지를 보는데 눈치 없이 눈물이 또 와락. 눈에 힘을 줘 질끈 감았다. 간신히 울음을 쑤셔 넣었다.


2주 뒤 예약되어있던 내과 외래 진료를 연휴 끝나고 받을 수 있도록 응급실에서 조치를 취해줬다. 다행이었지만 사실 공포스러웠다. 남은 50여 시간 동안 엄마가 버틸 수 있을까. 긴긴 연휴가 싫었다. 엄마가 아플 것 같아 애초에 아무 일정도 잡지 않았지만, 남편은 무슨 죄야. 예전부터 남편이 여행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여러모로 속상했다.


고마운 것도 많지만 미안함이 더 컸다. 근데 있잖아 사실은 나도 여행 가고 싶어. 나도 이 연휴가 너무나 소중한 직장인 인걸. 나도 넷플릭스 몰아보고 늦잠도 자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어. 말할 수 없는 생각을 황급히 주워 담으며 남은 연휴 동안에 엄마 집에서 자야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새벽 1시 반. 엄마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우리 집으로 돌아와 대충 짐을 쌌다. 짐을 싸는데 그제야 눈물이 터져서 소리 내 대충 울었다. 여보 근데 이 시기가 지나가긴 하겠지? 진짜로 진짜로 언젠가 끝나겠지? 울면서 손과 발은 바쁘다. 마음이 급했다. 


남편은 그럼 당연하지 하며 나를 달랬다.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끝이 있긴 한 걸까.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매일 넘어져도 매일 일어나면 나아갈 수 있다던데. 그냥 안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포기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신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힌트를 준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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