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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Apr 20. 2023

울고 싶은 나는 필요없다.



요즘 엄마가 아프셔서요.

헉 어디가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 매일 같이 보는 직장 동료, 시댁 식구들이 내게 묻는다. 내 표정이 안 좋거나 급하게 연차를 쓰거나 갑작스레 선약을 취소할 때.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묻는다. 어디가 아프시냐고.


매 순간 고민한다. 지금 이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해서 대답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모조리 실패다.


대표적으로 이석증, 위염, 위경련, 허리디스크 등 큰 키워드를 한 가지만 말하거나 여기저기 모든 병이 한꺼번에 와서요. 정도로 처리한다. 내게는 지금까지 이십여 년이 넘도록  반복되는 이 상황을 정리할 능력이 없다. 근데 오늘은 좀 해보려고.


최근에 '병상첨병' 이라는 사자성어를 알게 됐다.

그래 엄마랑 내가 힘든 건

이 죽일 놈의 병상첨병 때문이다.


병상첨병(病上添病)
[병ː상첨병]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겹쳐 생김.



지금 상황을 나열하자면. 귀 먹먹함이 메인이다. 다른 게 메인일 때도 있다는 소리다.


엄마의 귀 먹먹함은 1월부터 시작됐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귀 먹먹함이라 함은 비행기를 타거나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귀에 압이차서 막히는 듯한 느낌을 말한다. 보통은 코를 막고 부는 이퀄라이징을 하면 뚫린다. 그러나 엄마의 비행기는 3개월째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귀 먹먹함으로 올해 새롭게 가본 병원은 총 6곳. 이비인후과가 메인이고 올해는 신경정신과도 추가해 봤다. 대학병원은 물론이고 한의원도 가봤다. 강남이고 강북이고 좋다고 하면 갔다. 귀 어지럼증, 이석증, 메니에르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가입되어 있고 수년간 모든 검색어와 함께해 왔다.


귀가 꽉 막힌듯한 '이충만감' 증상으로 진단받을 수 있는 병명은 다음과 같다. 이관염, 이관개방증, 이관폐쇄증, 이관협착증, 이석증 후유증, 메니에르, 중이염, 턱관절장애, 저음성난청, 돌발성난청, 코질환 등. 엄마를 괴롭히고 있는 증상은 생각보다 많은 질병에서 나타난다.


하늘이 나를 도와, 첫 번째 의사가 제대로 된 진단을 내려 정확한 치료법을 알려주고 약을 처방해 준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


원인을 찾기 어려운 까닭에 지금까지 명의를 찾아 눈품 발품을 지독하게도 팔아왔다.







  원인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맞는 약과 치료법이 환자를 고친다. 지금까지 엄마가 아파온 모든 병이 그러했다. 맞는 진단을 내리면 차도가 있었다. 아니면 약을 먹어도 똑같았다. 특히나 귀는 왜 이럴까. 암도 고치는 세상에서. 귀 커뮤니티에서는 모두가 고통을 호소한다. 이 병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죽고싶게 만든다고.


 약을 바꿔가며 원인을 찾아야 하는 병에 걸렸는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엄마는 선천적으로 소화기관이 약하다. 이비인후과 약은 대부분 위장장애를 동반한다. 약을 2주 정도만 반복해서 복용해도 위장에 바로 염증이 오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순위가 바뀐다. 귀보다 위를 고쳐야지. 귀를 치료하던 약을 홀딩한다. 내과로 간다. 위염약을 먹고 죽을 먹어가며 위를 고쳐나간다. 그러는 사이 귀는 악화된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거다. 그래도 어떻게 해? 당장 위장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는데요. 아 먹는약 말고 귀에 주사 같은 거 안 맞아봤냐고요? 왜 안 맞아봤겠습니까.


이렇게 약을 먹다 보면 어떤 날에는 위장이 아니라 대장으로 오기도 하고, 발뒷꿈치 통증이라던가 하지불안증후군이라던가 안과 질환이 병행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병상첨병이다. 이런 병~상


귀 약마다 부작용도 같이 오는데 두통 , 불면, 입맛 잃기 등이 있다. 뭐가됐던 호전에 도움되지 않는다. 저음성 난청이라고 처방받은 약의 경우 고용량 스테로이드 처방으로 부종, 전신 가려움, (또) 불면이 동반 되기도했다.


못 먹고 못 자는 엄마는 매일 말라가고 동시에 모든 면역이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시한폭탄 같은 이석증이 시동을 건다. 이제 엄마는 어지러움증까지 추가된다. 이탈한 이석을 제자리에 넣어주는 치환술을 해야 한다. 치환술 잘하는 병원을 찾아가고, 그게 주말이라면 응급실로 달려가게 된다. 물론 응급실에는 치환술을 잘하는 의사는 없다.


이석증을 포함한 귀 관련 질병은 근본적으로 '잘 먹고, 잘 자기'가 필수다.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안 받아야 재발을 안 한대. 한 때는 그 말이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뭐?? 잘 먹고 잘자라고?? 세상에는 그게 어려운 사람도 있다고.





출근을 하면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엄마 잘 잤어?


잘 자야만 한다. 잘 자면 최소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일단 못 자면 모든 증상이 악화된다. 나의 하루는 엄마의 컨디션이 결정한다. 매일 성적표 받는 마음으로 엄마의 답장을 기다린다.


 일 하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으러 뛰어나가고 자리에 돌아와서 급하게 검색을 한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주고 가끔은 반차를 쓰고 달려간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매 순간 달려갈 수는 없다. 나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이런 순간들이 1년에 한 번이라면 달려가겠지만, 엄마가 매일매일 아파왔던 일들은 내가 교복을 입던 학생 때부터 반복되 온 일이기에, 한편으로는 의연하기도 하다. 때마다 달려갔다면 나는 엄마 병원비를 못 냈을걸.


나의 엄마는 선천적으로 너무나 약하고 내가 쥐고 있는 희망이란 것들은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큰 기대를 했었는데. 임신소식을 들으면 엄마의 귀가 뻥 하고 뚫리지는 않을까 하고. 하지만 신은 냉정했다. 엄마는 좋아지지 않았다.


엄마가 미안해한다. 내가 우리 딸 챙겨줘야 하는 시기인데 미안하다고. 어느 날에는 울먹인다. 나는 이 와중에 그녀의 감정 쓰레기통까지 해낸다. 그래 내가 다 들어줄게. 뭐든. 덜 아플 수만 있다면. 어떤 날에는 엄마가 엉엉 울었다. 이러다 귀가 영영 안 들릴 것 같다고. 그날은 나도 포기하고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엄마도 지키고 아가도 지키기 위해서 더 강한 사람으로 진화할 때가 왔다. 임신 8주차. 울고 싶은 나는 필요없다. 더욱 단단한 내가 필요하다. 뱃속 아가를 생각하면 짜증이 나서도 안 된다. 조금 더 강해지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 강한 나는 이 고통에서도 살아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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