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깰 것인가 묻을 것인가?
“여보, 나 퇴직금 계산해보니까 1억 2천만 원 정도 나와. 당신 거 7천만 원 합치면 거의 2억이네. 우리 주택담보대출이 3억 남았잖아. 이거 받아서 확 갚아버릴까? 그럼 매달 나가는 이자 100만 원 넘게 줄어드니까 생활비 걱정 덜잖아.”
철수의 제안에 민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치, 빚 없으면 속은 시원하겠지. 근데 여보,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세금을 떼고 주잖아. 근데 이걸 IRP 계좌로 그대로 옮기면 세금을 안 떼고,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0%나 깎아준대. 우리가 빚 갚아서 아끼는 이자랑, 세금 아끼고 투자해서 버는 돈이랑 뭐가 더 이득인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퇴직급여(퇴직금) 처리 방식은 은퇴 자산의 크기를 결정하는 중대한 갈림길이다.
일시금 수령은 부채 상환을 통한 현금흐름 개선(지출 감소) 효과가 있다. 반면, IRP(개인형 퇴직연금) 이전은 과세 이연(세금 낼 돈으로 재투자)과 퇴직소득세 30% 감면이라는 강력한 혜택을 준다.
대출 금리가 6~7%를 넘는 고금리 상황이 아니라면, 수학적으로는 IRP로 이전하여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용어 박스] 이연퇴직소득세
퇴직금을 IRP 계좌로 입금하면, 퇴직 시 내야 할 세금(퇴직소득세)을 징수하지 않고 미뤄준다(이연). 이후 55세부터 연금으로 수령할 때, 원래 낼 세금의 70%(10년 초과 수령 시 60%)만 내면 된다. 사실상 세금을 30~40% 할인받는 셈이다.
철수가 퇴직금 1.2억 원을 일시금으로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근속연수 등에 따라 다르지만, 실효세율 5% 가정 시)
약 600만 원의 세금을 즉시 떼고, 통장에는 1억 1,400만 원이 입금된다. 철수는 이 돈으로 대출을 갚는다.
장점: 대출 원금이 줄어 매월 나가는 원리금이 감소한다. 심리적 압박감이 사라진다.
단점: 600만 원이 세금으로 증발했다. 또한 1억 2천만 원이라는 거위가 더 이상 알(수익)을 낳지 못하고 사라진다.
특히 조기은퇴자에게 퇴직금은 ‘최후의 목돈’이다. 이 돈을 빚 갚는 데 다 써버리면, 브릿지 기간(50~55세) 동안 활용할 유동성이 사라진다. 집(깔고 앉은 돈)의 비중만 더 높아지는 셈이다.
반면, 1.2억 원을 IRP 계좌로 이체하면 세금을 떼지 않고 1.2억 원 전액이 입금된다.
이 돈을 연 5% 수익률의 ETF나 채권으로 운용한다고 치자.
세금으로 나갔어야 할 600만 원도 철수의 계좌에 남아서 수익을 낸다.
나중에 55세가 되어 연금으로 받을 때, 원래 낼 세금(600만 원)의 70%인 420만 원만 내면 된다. (나눠서 내므로 부담도 적다.)
결과적으로 [180만 원의 세금 절약] + [원금 전액의 복리 투자 효과]를 얻는다. 이는 대출 이자(연 4%대)를 상쇄하고도 남는 이득이다.
이것이 가장 큰 오해다. IRP에 들어간 퇴직금은 전액이 아니더라도 ‘법정 사유’(무주택자 주택 구입, 요양, 파산 등)나 ‘중도 인출(일부 상품)’이 아니면 부분 인출이 어렵긴 하다.
하지만 전략이 있다.
퇴직금이 1.2억 원이라면, 이를 하나의 IRP 계좌에 다 넣지 말고 복수의 IRP 계좌로 쪼개서 받을 수도 있다(회사 규정 및 금융사 확인 필요). 또는 일단 전액 받고 나서, 정말 급할 때 계좌를 해지하면 된다.
그냥 처음에 일시금으로 받았을 때 냈어야 할 세금(600만 원)을 그때 낸다. (기타소득세 16.5%가 아니라, 분류과세인 퇴직소득세를 낸다.)
즉, IRP에 넣었다가 깨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다. 운용 수익에 대해서만 16.5%를 내면 된다.
따라서 일단은 무조건 IRP로 받아서 굴리다가, 정 안 되면 그때 깨서 빚을 갚아도 늦지 않다.
철수의 퇴직금 1.2억 원. 대출 금리 4.5% vs IRP 투자 수익률 5% 가정.
IRP 계좌 관리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비대면 개설 시 ‘수수료 전액 면제’를 해주는 증권사가 많으므로 반드시 수수료 무료 계좌를 터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출 금리가 투자 수익률보다 월등히 높지 않다면(예: 대출 금리 7% 이상), IRP로 받아서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정답이다. 민정의 말대로 빚은 조금씩 갚고, 퇴직금은 황금거위로 키워야 한다.
국세청 홈택스에서 ‘퇴직소득 세액 계산’ 모의 계산을 해본다. 내가 일시금으로 받을 때 낼 세금이 얼마인지(예: 500만 원인지, 1,000만 원인지) 숫자로 확인한다.
운용 관리 수수료와 자산 관리 수수료가 **‘평생 무료’**인 증권사 다이렉트 IRP 계좌를 개설한다. (기존에 있다면 수수료 부과 여부 확인)
회사 담당자에게 “퇴직금은 IRP 계좌로 넣어주세요”라고 명확히 요청하고, 통장 사본을 제출한다. 이때 퇴직급여 지급신청서에 ‘계좌 이체’를 선택한다.
다음 화에서는 브릿지 자금의 총정리, ‘인출 순서도’를 다룬다. 퇴사 다음 달부터 생활비 400만 원을 꺼낼 때, 일반 계좌, ISA, 연금저축, 퇴직금 중 어느 주머니부터 열어야 세금을 한 푼도 안 낼까? 최적의 인출 알고리즘을 공개한다.
본 글은 개인 의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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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2026-01, 소득세법 제146조 퇴직소득 및 제129조 원천징수세율)
금융감독원 -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 자료 (IRP 활용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