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 에필로그
지수 : 에필로그
LA행 비행기 창밖으로 구름이 흘러갔다.
13시간. 아직 8시간이 남았다. 나는 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
깨어났을 때,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흰 천장. 소독약 냄새. 규칙적인 기계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수연은 어디 있지?
유진 언니는?
마이클 강이 병실로 들어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그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흰 백합. 향기가 병실에 퍼졌다.
"깨어나셨군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눈가에 안도가 어려 있었다. 아니, 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수연은요? 유진 언니는요?"
"두 분은... 떠나셨습니다."
"떠났다고요?"
"개인 사정이 생기셨답니다. 급하게. 지수 씨가 깨어나시기 전에 가셔야 했답니다."
"연락처라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이클 강이 꽃병에 백합을 꽂았다. 창가에 놓았다.
"하지만 지수 씨가 건강을 되찾으셨으니, 그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가 나간 후, 휴대폰을 꺼냈다.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호가 없었다. 연락처 목록을 스크롤했다. 유진 언니도 없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폰에서 사라져 있었다.
마이클 강에게 물었다. 혹시 연락처를 찾아볼 수 있냐고.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결과는 오지 않았다. 한 번 더 묻지 않았다.
수연은 나와 함께 있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였던 사람이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아내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떠난 게 어쩌면 서로를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유진 언니는 왜 떠났을까? 그녀는 올 때도 문득 왔으니 갈 때도 문득 가버렸나 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두 달 후, 퇴원했다.
몸이 가벼웠다. 전에 없던 에너지가 느껴졌다. T-오가넬. 유진 언니가 내 몸에 넣어준 것. 결함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하고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공 기관. 덕분에 나는 다시 살 수 있었다.
왼손 끝의 미세한 떨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서명할 때 펜이 흔들렸다. 의사는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뇌가 재가동되는 데는 성공했지만, 모든 회로가 예전처럼 돌아오려면 더 필요하다고.
출근했다. 칼릭스 본사. 35층 의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비서들이 일어서서 인사했다.
"의장님, 어서 오세요."
의장. 그 단어가 낯설었다.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책상에 앉았다. 창밖으로 송도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졌다. 마치 원래 내 자리였던 것처럼, 의자는 내 몸에 잘 맞았다.
이사회 의장. 칼릭스 바이오의 최고 의사결정권자. 전에 누려보지 못한 권력이었다. 수천 명의 직원, 수조 원의 자산, 미래를 바꿀 기술. 그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었다.
메일함을 열었다. 수백 개의 메일이 쌓여 있었다. 하나씩 확인했다. 보고서, 회의 요청, 승인 건. 그리고...
제목 없는 메일이 하나 있었다.
보낸 사람도 없었다. 첨부 파일만 하나 달려 있었다. 오디오 파일.
스팸이려니 했다. 삭제하려다가, 다른 메일에 묻혀 잊어버렸다.
***
마이클 강은 좋은 남자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