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연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올까 싶었던 의심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내 나이 50이다. 다행히도 올해부터 만으로 나이를 사용한다고 하니 두 번째 50살인 셈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50이라는 숫자는 낯설다. 연구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35~70세까지를 중년기라고 보고하고 있으니 나도 이제 중년 여성이다. 한 달에 한 번 염색은 기본이고 노안으로 인해 쓰고 있던 안경을 치켜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읽을거리의 거리를 조절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중년기에 경험하는 불편함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건 4번째다.
‘내 나이가 50이구나!’라고 인식하기 전에는 나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본 적은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외치던 나에게도 ‘50이라는 나이’는 단순히 숫자만은 아니었다. 매년 감기 시즌이면 감기를 앓고 넘어가기는 했지만,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 50을 앞둔 시점 건강이 좋지 않아 몇 차례 입원하였다. 명확한 병명을 내리기 어려웠기에 면역력 저하로 인한 원인불명성 질환이라는 진단명을 받았다.
진단명을 받고서 집에 오는 길에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급한 것 하나 없이 살아왔는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빨리빨리’를 외치며 자신을 몰아세웠다. 인생 전반전의 멋진 마무리와 완벽하게 세팅된 인생 후반전으로 돌입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 초조함과 불안감을 가지고 첫 번째 50살을 살았다. 첫 50살은 연습을 했으니 두 번째 50살은 이전보다 편안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치 첫째 아이는 얼떨결에 엄마가 되어 정신없이 아이를 키웠다면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이전의 육아 경험으로 한층 편안하게 지나갔던 것처럼.
돌아보니, 첫 번째 50에는 건강 이상을 경험하면서 욕심 어린 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탐색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성공의 결과가 돈이든 명성이든 그게 무엇이든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내 삶의 목적에 맞는 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무엇인가를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매일매일 타임 테이블에 꽉 채워진 일정들을 보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넌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해?”라고 질문했다.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나 자신에게 다시 물었다.
“너, 행복하니? 진짜 행복한 거 맞지?”
이번에도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충격이었다. 강박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 일이 있고 잠시 멈춤이 필요한 순간임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잠시 중단했다. 내가 직접 해야 할 최소한의 일과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제외하고 모든 젓을 중단했다. 생각하기도 글 읽기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중단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나갔다. 아들이랑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기, 지인을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기, 가족에게 전화하기 등처럼 아주 간단한 일만 했다. 그리고 내게 온전하게 집중했다.
글을 쓰며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엇인가에 몰두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25년 동안 연구하고 수업하던 것과는 다른 분야의 다양한 것들을 배웠던 시간이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기회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그 뿌리는 항상 땅속 깊이 내리고 있다. 그렇게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내 삶의 목적을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유연성이라는 무기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학교에 나가지 않고 내가 있는 곳이 강의실이 되었지만,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보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수업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학생들과 소통은 더 변수가 많고 어려웠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해오지 않던 낯선 것,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편에서 바라보기 편한 눈높이로 바꿔야 했다. 지금 여기에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한 순간들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에도 작은 변화는 계속된다.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 쉽지 않은 것을 우리는 또 해낼 용기와 힘을 가지고 있다. 그걸 믿는다.
서핑을 즐기는 친구가 내게 서핑에 관해서 설명하던 일이 있었다. 서프보드를 타고 파도의 경사진 면을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고도의 평형감각과 정확한 타이밍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리고 서퍼들이 서프보드 위에 서서 파도 타던 모습만 봐도 아찔해 손사래 치던 나에게 이 위험한 스포츠를 즐겨보라고 권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서핑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으로 50+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비슷하다. 서프보드에서 중심을 잡고 파도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몸을 싣던 친구의 서핑하는 모습이 새삼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 서핑을 배우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게 다가올 50+의 시간에는 삶의 변화에 민감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나다움을 유지하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유연함으로 살아가고 싶다. 수많은 변화의 파도가 찾아오겠지만 그중에 내가 즐길 수 있는 파도를 고를 수 있길 바란다.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고 내가 즐기기에 적합한 변화의 물결에 침착하게 올라타 속도와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