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는 못 가도 매일은 달립니다. 할머니 러너를 꿈꾸며
2024년 2월 어느 날 아침. 반 만 떠진 눈으로 더듬더듬 핸드폰을 집어 든다. 어젯밤에도 보다가 머리맡에 두고 잤던 핸드폰 속 인스타 그램을 습관적으로 켠다. ‘와~예쁘다, 날씬하다, 여행도 자주 가네. 부럽다.’ SNS 세상은 화려하기만하다. 순간 부스스한 머리에, 게슴츠레하게 이불 안에서 저들을 마냥 부러워 만하는 내가 한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조금만 봐야지 켰다가도 30분에서 한 시간이 훌쩍 지나는 패턴도 너무 지겨웠다. ‘아~ 아침부터 이건 아니지. 뭐든 해보자. 쫌!! 일단 나가서 달려보자!’
나는 무릎 나온 면 추리닝 바지에 패딩을 주섬주섬 걸쳤다. 변변한 러닝화 하나 없지만, 중3 아들이 작년에 신다가 팽개친 스케쳐스 운동화가 나름 푹신하다. 신발을 신고 아파트 단지 안 초등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은 다행히 열려 있었고, 아무도 없어 다행이다. 평소에도 인증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축구 골대에 핸드폰을 비스듬히 세웠다. 동영상 촬영모드를 켜고 걷기와 같은 달리기로 한 바퀴를 돌았다.
‘뭐야~ 한 바퀴가 왜 이리 길어. 왜 자꾸 운동화엔 모래가 들어오는 거야~’
투덜투덜. 그래도 나를 째려보던 동영상 덕에 세 바퀴는 달렸다. 방구석 문턱을 넘어 운동장으로 나온 내 자신이 기특했다. 그리고는 이내 매일의 일상을 나누는 내 일기장 같은 카톡 방에 달리기 사진을 올렸다. ‘오늘부터 달리기 1일!’ 회사 동료 4명이 함께 하는 이 방은 질펀한 수다의 장이기도 하지만, 매달 독서모임도 하고 만보 걷기도 7년 넘게 하는 알찬 방이다. 월간 만보 인증 샷을 올리면서 서로 나누는 칭찬은 마치 내 숙제 장에 크게 찍힌 ‘참 잘했어요!’ 도장 같았다. 15년째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대표 고인물인 나, 정 부장에게 이 단톡 방은 가느다랗지만 끊어지지는 않는 무명실처럼 나를 자기계발의 세상과 이어주고 있었다. 시시해 보이는 만보 인증도 꾸준히 하다 보니 나를 매일 걷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날 아침, ‘7년 동안 걸었으면, 이제는 좀 달려 봐야지?’ 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선언을 했으니, 내일도 나올 수밖에 없겠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빨리 걷는 속도로 달리면 되지 뭐. 운동장을 열 바퀴 돌 수 있을 때 공원으로 나가자. 공원이 1.8 킬로니깐, 세 바퀴 돌면 마라톤 5킬로 나갈 수 있겠네!’ 갑자기 목표를 만들었다. 내친 김에, 달리기라면 자신 있다고 늘 으스대는 남편에게 같이 나가자했다. 선심 쓰 듯 응해준다. 즉흥적인 기분파, Feel생Feel사의 나는 이날 아침, 그렇게 느닷없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루하루는 촘촘히 열심히 살지만 매일 소진되어 가는 느낌, 빈껍데기 집을 이고 지고 기어가는 달팽이 같은 느낌은 50대 중년 워킹 맘이라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누가 아무런 말을 보태지 않아도 회사에서는 MZ세대와 은퇴를 앞둔 임원들 사이에 끼어 곧 내 차례구나 하는 불안감으로 뭉쳐진 먹구름은 늘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여기에 불을 지피는 사춘기 녀석의 발악은 온라인 맘 카페서 보던 한탄이 엄살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해 주었다. “왜 그렇게 탄천에 엄마들이 나와 걷는지 알겠어요. 속이 너무 답답해서 매일 걸어요. 아이의 차가운 눈빛을 보면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아요.” 자주 보던 푸념이 내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어머님, 오늘도 숙제를 안 해왔습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해 따라가는 게 힘들어 보이네요. 아랫반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수학 선생님의 전화로 내가 스트레스를 받건 말건, 공부 좀 한다던 중3 아들은 온 몸으로 반항하고 있었다. 3년 수학 선행이 당연히 힘에 부치고 어렵겠지. 그러나 이 동네 아이들은 다 하는 걸, 왜 너만 이탈을 하려는 건지 야속함이 앞섰다. 곤두 박칠 치는 아이의 성적표는 마치 나의 형편없는 육아 성적표 같았고, 아이 하나 제대로 못 키운다는 조롱 같았다.
“너 도대체 왜 그래? 뭐가 될 려고!!!!” 시퍼렇게 날 선 비난의 화살을 아이에게 쏟아 던지면 돌아오는 건 속을 뒤집는 대답이었다.
“난 우울증이에요. 난 게임에 집중할만한 에너지 밖에 없다고요.” 절망과 분노의 눈빛. 사춘기가 갱년기를 이겼다. 학군지 동네 아이들이 KTX를 타고 전력질주 중인 판에서 나는 아들을 마을버스로 갈아 태웠다. 형 같은 멘토 샘도 찾아주고, 말랑말랑한 학원으로 바꿔주고, 게임도 맘껏 즐기게 해줬다. 아이의 숨통이 트여져 갈수록 나의 답답함은 커다란 돌덩이처럼 자랐다. 나도 어느새 씩씩대며 탄천에서 두 팔 힘차게 치고 나가는 아줌마부대에 합류해 있었다. 걷기가 아닌 달리기로. 탄천 위의 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맞아주었고, 그렇게 나는 걷기만 하던 사람에서 달리는 사람으로의 진화를 시작했다.
4월의 봄날, 두 달 전 신청했던 마라톤 참가를 위해 남편과 함께 하남 미사 조정경기장으로 향했다. ‘전기사랑마라톤?‘ 처음 들어보는 대회다. 행사장엔 이미 온갖 텐트가 즐비하게 줄지어 있다, 전기관련 회사들과 공기업들이 이렇게 많다니. 마치 저들의 연합 체육대회에 내가 눈치 없게 낀 느낌이었다. 긴장은 잠시, 행사를 진행하는 유명 개그맨이 마이크를 쥐고 특유의 유쾌함으로 말한다.
“여러분 오늘 마라톤에서 가장 기뿐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5킬로 코스는 이곳 지형 상 5킬로가 아니고 4.5킬로입니다!”
“우와!!!!!!!!!!!!!!!”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의 긴장도 풀어지는 듯하며 너무 기뻤다. 마침 회사 단톡 방의 윤 부장님도 딸아이와 함께 참가했다. 달리지 않고 걸어도 된다는 꼬임에 응해 준 것이다. 독서 모임이건, 만보 건 뭐든 같이 해 주는 참 고마운 동지이다. 드디어 5킬로 그룹 출발! 요란한 시작과 함께 그간 연습한 천천히 달리기를 시전 하는데 옆에는 가족 단위로 참가한 꼬맹이들이 많았다. ‘이 아이들보다 뒤쳐져서는 안 된다!’ 일단 그 날의 목표는 멈추지 않고 달리기였다. 얼굴은 시뻘게지고, 봄 햇살은 따갑다. 선글라스라도 끼고 올 걸. 옆에서 연습 중인 조정 보트들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나가는데, 중력은 땅 아래로 자꾸 무거운 내 몸을 잡아당긴다. 그 때 뒤에서 윤 부장님이 엄청 빠른 경보 걸음으로 날 쫓아온다.
‘아니, 내 달리는 속도나 부장님 걷는 속도나 똑같잖아?’
조급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두 달 연습했는데 처음 출전한 사람보다 느려서는 안 되지. 1킬로 남았다는 푯말이 10킬로 같이 보인다. 영원할 것만 같은 느낌 속에서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 틈에서 꾸역꾸역 움직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저 멀리 이미 완주한 남편이 폰으로 나를 찍으며 파이팅을 외친다. 드디어 결승선 도착! 메달을 받고 아무데나 철퍼덕 앉아버렸다. 달릴 때는 죽을 것 같더니 정신을 차리고 나니 기분이 좋다. 비록 짧은 거리였지만 나에게는 풀 코스 같은 4.5킬로였다. 포토 존에서 사진도 찍고 축제가 따로 없네. 이래서 사람들이 대회를 나가는구나 싶었다. 이 날의 좋은 추억과 성취감을 선물로 받은 나는 다음엔 어떤 대회를 나갈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4년 한 해 동안 퐁당퐁당 마라톤 대회도 참여하며 달리기에 재미를 붙였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우울감을 털어내는 데 최고였다. 답답할 때마다 숨 구멍이 되어 주는 탄천으로 우다다다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됐다. 꾀가 날 때는 나의 뇌를 속였다. ‘4킬로만 뛰자. 2킬로 갔다가 돌아오면 되지. 정 힘들면, 2킬로 지점에서 카카오 바이크를 타자.’ 길 위에서 낑낑대며 달릴 때면 사춘기고 뭐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저 가로등까지만 가자. 저 나무까지만 가자. 일단 해내자는 마음뿐이었다. 유난히 물에 젖는 솜이불처럼 무겁고 힘든 날, 그냥 걸을까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 때,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나를 앞질러 달리신다. 종종 마주치는 분인데, 편마비가 있으신 지 몸은 약간 기울어져 있고, 거의 걷기 속도인 종종걸음으로 쉬지 않고 달리신다. 밑창도 얇아 보이는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 저 몸을 지탱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길 위의 러너들에게 배우고, 무언의 응원도 받으며,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선수급 러너들에겐 보잘 것 없는 성취지만, 평생 날렵함과 거리가 멀었던 내 몸뚱이로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는 천지개벽할 만한 변화였다.
‘나는 다른 건 내세울 게 없어도 달리기는 하는 사람이야.’ 라는 자기 효능감, 기특함, 자신감이 나를 또 탄천으로 이끌었다.
사춘기 말고도 나를 계속 달리게 해 준 또 하나의 채찍이 있었으니, 바로 건강 문제였다. 1년 전 2023년, 매년 하는 건강검진에서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고혈압에, 신장 수치를 나타내는 사구체여과율이 평균보다 낮으니 신장내과를 꼭 가보라는 것이었다. 대학 병원에 신장 조직검사를 받으러 가던 날, 꾹 밟아버려 납작해진 맥주 캔 마냥 쭈그러져 있었다. 서울 대학교 병원은 그 이름만으로도 입구부터 사람을 짓눌렀고, 하필 검사 병동은 암센터와 같이 있었다. 여러 검사 후, 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니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마치 나의 운명을 좌우하는, 천국과 지옥의 심판 선언같이 느껴졌다.
“일단 조직검사는 괜찮네요. 3개월 단위로 오셔서 추적 검사하고 주기적으로 집에서 혈압을 체크하세요. 여기 수첩을 드릴게요. 혈압과 신장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요. 신장이 안 좋으면 혈압을 올리고, 혈압이 올라가면 신장에 무리가 갑니다. 한번 망가진 신장은 회복이 불가능 하지만, 더 나빠 지지 않게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망가진 신장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신장 질환도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으로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관리해야 함을 알게 되었지만, 식단과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등장한 달리기는 나의 구원 투수였다. 달리면 혈액 순환에 좋다 하니 안 할 이유가 없었고, 만성 질환자는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닥치는 대로 나가서 몸을 움직이고 나면 마치 정상인처럼 ‘나는 건강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달리기가 참 고마웠다. 늘 그 자리에 있는 탄천 길, 흐르는 물, 그리고 길 위의 러너들은 한 팀 같았다. 사시사철 이들에게서 받는 위로와 에너지는 아마 달려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봄에는 벚꽃을 감상하며 달렸고, 여름에는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샤워하는 맛에 달렸고, 가을에는 달리기에 최고인 선선한 날씨 때문에 달렸고,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며 달렸다. 동굴에서 마늘을 먹는 곰처럼, 이렇게 참고 달리며 겨울을 견디면 봄에는 날아갈 것 같았다.
한창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 지내던 2024년 말, 회사에서 신규 동호회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달리기가 재미있으니 마라톤 동호회 한번 만들어 볼까?’하는 나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한 번 해볼까? 누가 봐도 달리기와 거리가 멀게 생긴 내가 마라톤 동호회 회장을 한다고 직원들이 놀리면? 선수들이 지원하면 어떡하지? 나 5킬로만 달린다고 무시하면 어떡하지?’ 그때 나의 동지, 윤 부장님도 부추긴다.
“고니는 할 수 있어. 한번 모집 공고 내봐요. 나도 도와줄게요.”
에라, 모르겠다. 일단 용기내서 공고를 올렸다. 다행히 도쿄 마라톤까지 참가한 적이 있는 한 명만 빼고 모두 나와 비슷한 초보 러너들이었다. 15명 중에 스무 살 어린 직원들이 절반이었다. 그렇게 덜컥 달리기 동호회 회장이 되었다.
“잉? 정부장이 마라톤을 한다고?” 내가 달리기 동호회를 만들었을 리 없다며 물어본다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 동호회장 씩이나 돼서 회원들보다 못 달리면 안 되지. 열심히 하자.’
동호회를 만들고 난 후 더 열심히 달렸다. 10킬로 마라톤도 네 번 나가고, 15킬로까지 달려보며 하프의 꿈도 꾸었다. 한 번은 동호회에서 달리기 클래스를 열어 전문가를 초빙한 적이 있었다. 오합지졸 같았던 우리는 제대로 군기 잡힌 스트레칭 특훈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때 강사님이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잘 달리시네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한, 두 번째로 잘하세요. 달리기에 필요한 도구가 좋으십니다. 그렇게 꾸준히 연습하세요.”
날아갈 듯 기뻤다. 내가 잘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잘 한다는 칭찬을 듣다니. 그렇게 신명 나게 1년을 달리다 보니 2025년 말, 한 해 달린 누적 거리는 1,100킬로를 넘어섰다.
달리기가 일상화 되어 갈수록 자연스레 하프와 풀코스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언제 쯤 하프에 도전할 수 있을까 생각 하던 즈음, 10킬로 대회를 나간 바로 다음 날 건강 검진이 있었다.
‘이렇게 운동했는데 수치가 더 좋아 졌겠지?’ 웬걸. 내가 너무 자만했나보다. 사구체여과율은 몇 달 전 보다 훅 떨어져 있었다. 억울하고 슬펐다.
“아무래도 달리는 중에 탈수 증상이 생기니 신장에는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달리지 말고 5킬로 정도만 하세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도 듣기 싫었다. 뭐야. 너무 시시하잖아. 나도 멋지게 하프 인증하고 풀코스도 나가고 싶은데 주저앉아야 하다니. 달리기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성취하고 싶은 욕심이 컸는데, 현실은 달랐다.
그 때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의 저자인 권은주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2025년 5월, 책 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있었다. 달리기의 황제 션이 주최한 행사에 운 좋게 선착순 당첨이 되었다. 권은주 감독은 내 짧은 꿈을 듣더니 책 표지에 ‘정고니 님의 할머니 러너의 꿈을 응원합니다.’라고 사인해 주셨었다.
‘그래. 할머니 될 때까지 달리면 되지. 풀코스 못하면 어때.’
애써 스스로를 토닥이며 또 길 위로 나갔다. 참 신기하게도 기쁜 마음으로 길 위에 서면 그날은 발걸음이 나아갈 듯 가볍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길 위에 서면 또 그런대로 무거운 마음을 위로해 준다.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마음을 짓눌렀던 여러 생각의 조각들이 한줌한줌 떨어져 나간다. 그저 나의 숨소리, 뺨을 스치는 바람, 팔의 움직임, 차가웠던 손가락 끝으로 서서히 퍼지는 온기만 느껴질 뿐이다. 그 때 마침 내 눈앞에 몸이 구부정하게 굽으신 할머니가 보였다. 추운 날이라 위에는 패딩을 걸치시고 크로스백을 사선으로 메신 채 아주 천천히 달리고 계셨다. 누가 봐도 각 잡고 달리러 나오신 것은 아니고 볼 일 보러 나왔다가 마치 신호등 녹색 불이 깜빡거려 바뀌기 전 잠깐 속도를 낼 때 달리는 그런 모습의 달리기였다. 한참을 그 할머니 뒤를 따라 나도 천천히 그 발걸음을 따라갔다. 한 2키로는 달렸을까.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리시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날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나가 달리는 나의 속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할머니를 가로지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너무 잘 달리시네요. 안 힘드세요?”
깜짝 놀라신 듯한 할머니의 눈썹에는 얼어버린 땀이 서리가 맺혀 아기 고드름처럼 방울방울 매달려있었다.
“하나도 안 힘들어. 천천히 뛰잖아."
“정말 대단하세요. 이 추운데 달리시고요. 자주 뛰세요?”
“어 매일 나와. 넘들처럼 빨리 안뛰고 내 속도에 맞춰 뛰어.”
“달린지 얼마나 되셨어요?”
“젊어서부터 달렸어. 천천히 이렇게 뛰면 한 200그람 금방 빠져.”
“와~ 진짜 멋지세요! 갑자기 말 걸어 죄송해요. 저도 어르신처럼 나이 들어도 달리고 싶어서 한번 여쭤봤어요.”
머쓱하지만 진심을 담은 엄지 척을 날려 드리고 파이팅 인사를 드렸다.
80은 훌쩍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는 소녀 같은 수줍은 인사를 하시고 계속 달려 나가셨다. 할머니의 굽은 등도 수줍은 미소만큼이나 잔뜩 겸손함을 업고 계셨다. 천천히 느린 작은 발걸음 이었지만 희노애락 세월의 편린들을 발걸음 하나하나에 곱씹으며, 짓누르며 살아내셨을 모습을 상상하니 괜시리 울컥해졌다. ‘무엇이 되려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라는 메시지가 그날 내 마음에 콕 날아와 앉았다. ‘그래! 나도 숨 쉬듯 달려보자. 내 삶에 달리기를 녹여내면 되지. 꼭 무엇을 이룰 필요는 없잖아.’ 나도 할머니가 되어 달리려면 늦을 테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달리기 마일리지를 쌓자고 다짐했다. 할머니가 아닌 지금 이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 한 없이 감사했다. 다시 가슴이 뛰었다.
2026년 새해가 밝았고, 나는 계속 달린다. 매일 달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지인들을 모아, 9명 러닝 인증 방을 만들어 버렸다. 각자 3개월 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3회 달리기 인증을 한다. 나의 일상에 중요한 일과가 되어 버린 달리기를 위해 새벽에 탄천으로 출근한다. 전날 쌓인 고민과 문제들을 훌훌 털어내며 달리다 보면, 나를 찾아 가는 길이구나 느껴진다. 나 자신에게 괜찮은지 물어봐 주고, 다독여 주는 시간이 되는 달리기. 방치했던 나를 돌보로 가는 길. 나를 사랑하러 가는 길. 그렇게 달리기 퇴근을 끝내면 그 길의 끝에는 한껏 충전된 나를 만난다. 그 충전된 에너지로 또 출근을 하면, 새로운 하루를 살아낼 만큼의 힘을 얻는다.
“부장님, 얼마나 건강해지려고 그렇게 매일 달려요?”, 회사 직원이 묻는다.
“아네요. 건강하지 않아서 달리는 거예요.”
그렇다. 나의 핸디캡 덕분에 나는 매일 달릴 이유를 안고 살아간다. 매일 이렇게 달려서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큰 이득이 많은 달리기를 안 할 이유가 없어서 달린다. 요즘은 출근할 때도 버스 정류장까지 달리고, 병원 가는 날엔 탄천 따라 달려서 간다. 5킬로, 7킬로 정도는 달려서 갈 수 있는 생활 러너가 되어, 그 어느 때 보다 자신감이 넘친다. 당장 내일 회사에서 쫓겨나더라도 몸으로 쓰는 알바든 뭐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 설사 움츠려 들어도 용수철처럼 솟아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이 달리기이다. 평생 풀코스는 못 뛰어도, 이렇게 짧은 거리를 매일 달리다 보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달릴 수 있겠지. 등이 굽어도 여전히 달릴 수 있는 다리는 되어 있겠지. 삶에 녹아낸 달리기로 할머니 러너의 꿈을 이루며 살고 있겠지, 꿈을 꾼다. 그 꿈을 향해 나는 오늘도 달리기 퇴근 후의 나를 만나러 한 걸음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