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유물

'지지지직, 징-, 딸깍'

by 기록하는 엄작가

가끔 외출 전 주머니를 확인하다 보면 묘한 허전함을 느낀다. 2026년 현재, 내 주머니에 든 것이라고는 얇고 매끈한 스마트폰 한 대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기억을 더듬어보면, 십여 년 전 나의 가방과 주머니는 지금보다 훨씬 무겁고 복잡했다.


소풍 전날, 가장 먼저 챙겨야 했던 건 일회용 필름 카메라였다. 서른 장 남짓한 기회를 낭비하지 않으려 숨을 참으며 셔터를 누르던 그 긴장감. 조금 더 자라서는 '디카(디지털 카메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렌즈가 징- 소리를 내며 튀어나올 때의 그 설렘은 요즘 스마트폰의 광학 줌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물리적인 쾌감이었다.


수업 시간, 책상 밑에서 몰래 만지작거리던 MP3 플레이어는 또 어떤가. 화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작은 기기의 버튼을 '딸깍'거리며 누를 때마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던 노래들. 요즘은 '싸이월드 감성'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로 묶여 불리지만, 우리에겐 그게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 한 곡을 넣으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파일을 옮기던 그 수고스러움이 그 곡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두툼한 전자사전까지 더해지면 나의 '디지털 무기고'는 완성됐다. 자판을 두드려 단어를 찾던 그 투박한 손맛. 이제는 이 모든 장비가 손바닥보다 작은, 단 하나의 ‘스마트폰’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상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편리해졌다. 고화질 사진을 무제한으로 찍고, 세상의 모든 노래를 실시간으로 듣고, 모르는 단어는 카메라만 갖다 대면 번역되는 시대. 하지만 가끔은 그 무겁던 가방과 딸깍거리는 버튼들이 그립다. 편리함과 맞바꾼 것은 어쩌면 '기다림의 미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 기다리던 며칠,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찾기 위해 웹서핑을 하던 시간들 말이다.


아저씨가 된다는 건, 최신형 스마트폰의 기능을 100% 활용하면서도 정작 마음 한구석엔 단종된 지 오래인 MP3의 물리 버튼을 그리워하는 모순을 견디는 일인 것 같다. 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그 시절의 추억을 꺼내 보는 내 마음의 무게는 오히려 더 묵직해진 오늘이다.


작가의 한마디

요즘은 '필름 감성' 필터로 사진을 찍더라고요. 우리는 그게 진짜 필름이었는데 말입니다.장비는 하나로 합쳐졌지만, 그 안에 담긴 추억은 여전히 제각각의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스마트폰 속으로 사라진 예전의 물건 중, 무엇이 가장 그리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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