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의 아이패드, 낡은 공장 위층의 봄

Salts Mill에서 만난 데이비드 호크니

by SooJin Jung


런던과 미국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활동하면서도 결코 요크셔와의 관계를 잊지 않았던 데이비드 호크니.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다뤘던 Salts Mill의 위층엔, 그의 이름을 달고 있는 특별한 전시 공간이 있다. 영국 런던조차 가보지 않았던 20대 초반 시절에도 요크셔만큼은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존경했던 아티스트의 출생지였으니까.


브래드퍼드 출신인 호크니는 RCA를 졸업하고 LA의 수영장과 캘리포니아 햇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뒤에도, 이스트 요크셔의 풍경으로 계속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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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rival of Spring, 2011

이 시리즈는 이스트 요크셔 해안 마을 Bridlington 근처에 작업실을 두고 인근지역의 1월부터 5월까지 계절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다. 약 40여 개의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이한 점은 이 모든 작업이 아이패드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이패드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호크니는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했다. 당시 나이 74세였다. 런던 Tate Britain에서 그의 80주년 회고전이 열린 게 2017년이었으니 역산하면 그렇다.


디지털 드로잉 툴을 실험적 매체가 아닌 회화적 탐구의 연장선으로 다룬 것이 그 당시에는 꽤 충격적이었다. Royal Academy에서 이 시리즈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함께 갔던 순수예술 하는 친구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느낌이 괜한 게 아니었던 게, 2023년엔 런던 Lightroom에서는 호크니의 작업 세계를 몰입형 영상으로 재구성한 Bigger & Closer가 열렸고, 같은 해 서울까지 순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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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풍경 기록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부족한지 금방 느끼게 된다.


나무의 잎사귀가 트이는 순간, 이른 봄 흙의 질감,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방향. 호크니는 아이패드라는 새로운 도구로 계절 변화의 뉘앙스를 담아냈다. 터치의 질감, 색감, 디테일이 인상적이고, 어딘가 윌리엄 모리스의 태피스트리를 연상시키는 평면성과 장식성도 있다.


하지만 모리스가 자연을 무늬로 만들었다면 호크니는 자연을 시간째로 들고 온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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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디스플레이는 실은 훨씬 방대하다. 다만 영상 작업과 대형 출력물까지 포함된 전체 구성을 이날은 다 볼 수 없어 아주 조금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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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쓴 게 2019년이었는데, 코로나 봉쇄 기간엔 노르망디 농가에서 여전히 아이패드로 봄꽃을 그렸고, 2025년엔 파리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70년 커리어를 아우르는 역대 최대 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이제 87세인 그는, 최근 자화상에서 여전히 노란 안경을 쓰고 담배를 물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한 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남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많이 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끝내 변하지 않는 자기만의 무언가를 붙들고 가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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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산 호크니 프린트는 지금도 내 방에 걸려 있는데, 아이들이 나보다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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