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원의 낙찰가보다 깊은 낡은 공장의 우정

낡은 방직공장 Salts Mill의 현재

by SooJin Jung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이 약 1,019억 원에 낙찰되었을 때 세상은 그 압도적인 숫자에 열광했다. 하지만 정작 호크니의 영혼이 깃든 장소는 화려한 뉴욕의 경매장이 아닌, 영국의 어느 오래된 공장 마을 솔테어 Saltaire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다.


리즈 역에서 기차로 단 15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떼어내더라도, 이곳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호크니의 홈타운 이자 현재 진행형의 유산, 솔츠 밀 이다.


1853년의 공장이 지금도 돌아가는 이유

흔히 세계유산을 마주할 때 우리는 과거의 영광을 보존하는 것에만 집중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솔츠 밀 주변을 천천히 걷다 보면 보존하는 것을 넘어, 그 가치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일에 가깝다.


1853년, 공장주 타이터스 솔트 경은 알파카 원단을 짜는 직물 공장을 세우면서 산업혁명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외면하지 않았다. 노동자를 위한 주거지와 학교를 짓고, 공장 하나가 아니라 사람이 살 만한 도시를 만들려 했다.


그로부터 약 130년 뒤, 옷감 생산이 중단되며 공장은 문을 닫는다. 이 건물을 다시 살린 건 조나단 실버라는 사람이였다. 그는 공장을 사들여 산업과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암 진단을 받았고, 오랜 친구였던 호크니는 그를 위해 정기적으로 자신의 새 작품을 기증하고 전시를 열었다.


건물 안에는 지금도 당시 젊은 호크니의 전시 오프닝 영상이 흐르고 있다. 호크니의 이력에서 솔츠 밀이 빠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하 수장고가 말해주는 것

건물 내부에 있는 1853 Gallery는 우리가 흔히 아는 미술관과 약간 다르다. 19세기 텍스타일 공장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채, 건물 명칭도 외관도 바꾸지 않았다. 매끈한 가벽 대신 150년 된 거친 벽돌 벽과 공장의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수백, 수천만원의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들이 앤티크 샵의 소품들과 뒤섞여 무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술이 권위의 옷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대중의 일상과 눈높이를 맞추는 순간이다.


특히 이 공간의 백미는 복도 끝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지하 수장고다. 엄격히 통제되어야 할 작품들이 유리창 너머로 훤히 보이는 이 장면은, 감추기보다 공간의 속살을 드러내며 유산과 대중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는 아주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그런데 솔츠 밀은 미술관만이 아니다. 같은 건물 안에 북샵, 앤티크샵, 리빙샵, 카페, 역사관, 옷 가게와 주얼리 샵까지 들어서 있다. 호크니 작품을 보다가 책을 사고, 커피를 마시다가 오래된 가구를 구경한다. 이 뒤섞임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다. 처음부터 이 공간이 그런 곳이었으니까.


멈춘 기계의 굉음 자리에서 탄생한 새로운 시선

이번 여정에서 구입한 포스터에는 New Ways of Seeing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유네스코 유산을 공부하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서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로.


19세기의 직조 기계가 멈춘 자리에 호크니의 선명한 아이패드 드로잉이 흐르는 광경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유산은 박물관의 차가운 쇼케이스 안에 갇혀 있을 때보다, 일상의 카페 테이블 위에서 일상의 대화와 섞일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 아닐까.


리즈에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이곳을 늘 첫 번째 코스로 추천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단순히 호크니의 유명세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월을 이겨낸 공간이 예술을 만나 어떻게 다시 숨을 쉬는지 그 경이로운 생명력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호크니가 70대에 접어들어 고향 요크셔의 숲을 보며 기록했던 끈질긴 관찰의 결과물, 'The Arrival of Spring' 시리즈를 통해 유산이 건네는 예술적 영감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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