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에서 만난 영국 국민 슈퍼마켓 M&S의 시작
영국 북쪽 리즈: Leeds 지역에 살며 가장 놀라웠던 건 막스 앤 스펜서(M&S)의 시작이 이 시장이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나를 진짜 놀라게 한 건, 시장 한구석의 작은 가판대가 지금은 대학 아카이브 안에서 한 도시의 역사로 연구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브랜드의 성공 이야기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시장의 사소한 일상까지 학술적 가치로 다루는 태도. 170년 역사의 커크게이트 마켓, Kirkgate Market을 이전보다 훨씬 품격 있게 보이게 한 그 아카이브의 기록을 따라가 보았다.
본격적인 역사에 앞서 이 브랜드의 위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국인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신뢰의 상징이다. 질 좋은 식품관과 정갈한 의류 브랜드가 합쳐진 형태로, 한국의 백화점 식품관과 SPA 의류 브랜드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살 게 고민될 땐 M&S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40년간 영국인의 일상에 깊숙이 뿌리내린 명실상부한 국민 브랜드다.
M&S의 역사는 1884년,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마이클 막스, Michael Marks로부터 시작된다. 영어가 서툴렀던 그가 시장에 내건 문장은 단순했다.
“Don’t ask the price, it’s a penny.”
가격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모든 물건이 1 페니였기 때문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흥정이 흔했기에, 이 ‘페니 바자, Penny Bazaar 방식은 꽤 혁신적인 판매 방식이었다.
몇 년 뒤, 마이클 막스는 도매상에서 일하던 토마스 스펜서, Thomas Spencer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성을 따서 만든 이름이 바로 Marks & Spencer,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랜드다.
이는 브랜드의 성공 신화를 넘어, 지역의 로컬리티와 산업유산을 공적 기록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방식이라는 점에서 꽤 인상적이었다. 시장 한 켠의 작은 가판대가 140년이라는 시간의 켜를 쌓아 대학의 연구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단순히 기업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도시의 생활사와 소비문화를 공동의 기억(Collective Memory)으로 자산화하려는 성숙한 문화 행정의 단면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시장 하나의 시간을 이토록 진지한 학술적 가치로 다룬다는 사실이, 리즈라는 도시를 이전보다 훨씬 품격 있게 보이게 했다.
M&S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회사가 단순한 유통 브랜드가 아니라, 꽤 집요하게 ‘품질’과 ‘시스템’을 만들던 회사였다는 걸 알 수 있다.
- 1934년: 소매업계 최초 패브릭 연구소 설립.
- 1950년대: 완벽한 스타킹 사이즈를 만들기 위해 영국 여성들의 다리 길이 조사
- 복지의 선구자: 직원 식당, 연금, 건강검진 지원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사내 복지 시스템 구축
당시 광고에 등장했던 합성섬유 Courtelle 스웨터의 가격은 단돈 £2.25. 제품의 표준을 만들기 위해 집요하게 연구했던 흔적이다.
예전 M&S 의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St Michael이라는 라벨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창업자 마이클 막스의 이름에서 따온 이 브랜드는 오랫동안 M&S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영국인들이 '예전 St Michael 시절이 더 좋았다'라고 회상하는 것은 브랜드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기억 속에 깊이 박제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수산물 가게 Hayes Seafoods 앞에는 늘 사람들이 줄을 선다. 학생에게는 10% 할인을 해 주는 넉넉한 가게다. 신선한 오이스터에 미뇽네트 소스를 곁들이면 비린 맛이 산뜻하게 잡힌다.
바로 옆 TEAPOT에서는 100가지가 넘는 차를 고를 수 있다. 티팟으로 서빙되는 차 한 잔의 여유가 꽤 좋다.
그리고 Malcolm Michaels Butchers. 원하는 두께로 고기를 썰어주는 정육점인데, 늘 사람들로 붐빈다.
빈티지 페어, 레코드 마켓, 마감 직전 1파운드로 쏟아지는 과일들. 시장에는 늘 작은 발견들이 있다. 런던에서 학생 시절에는 늘 화려하고 정제된 공간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곳이 좋다. 정교하게 분류된 박물관의 유리 케이스 안이 아니라, 마감 직전 1파운드로 쏟아지는 과일들과 투박한 정육점 칼소리 사이에 역사가 흐르고 있는 곳.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도시를 가든 시장 구경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