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내린 기차역에서 시작된 100년의 클래식, 베티스
인생은 가끔 무책임한 우연에 의해 길이 변경되곤 한다. 그리고 그 우연이 겹쳐진 자리에는 100년을 이어가는 위대한 유산이 뿌리를 내린다. 영국 요크셔의 상징, 베티스 티룸, Bettys Tea Rooms의 시작이 그러했다.
영국을 여행하다 보면 편의점만큼이나 자주 마주치는 것이 Tea Room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에게 티룸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카페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8세기, 술 중심의 펍 문화가 남성 전유물이었다면, 티룸은 여성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모일 수 있던 드문 공적인 공간이었다. 아름답게 세팅된 테이블, 정중한 서비스, 그리고 오후의 허기를 달래는 '애프터눈 티'는 영국인들에게 단순한 식사가 아닌 일상 속의 격식이자 가장 따뜻한 위로의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요크셔의 Bettys는 티룸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대를 이어 찾아오는 사람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삶이 녹아 있는 클래식 같은 공간이다.
베티스 티룸의 창업자 프리츠 부처, Fritz Butzer는 1907년 스위스를 떠나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은 '주소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유일한 단서는 가고자 했던 목적지의 이름이 독일어 소시지인 '브랏붜스트, Bratwurst'와 비슷했다는 사실뿐.
친절하지만 엉뚱했던 런던 사람들은 그를 발음이 비슷한 '브래드포드(Bradford)'행 기차에 태웠다. 전혀 모르는 땅에 덩그러니 떨어진 청년은 그곳에서 운명처럼 스위스 제과점 Bonnet & Sons라는 곳에 취직했고, 하숙집 주인의 딸과 사랑에 빠졌으며, 처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919년 하로게이트에 첫 '베티스'의 문을 열었다.
이 서사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목적지를 상실한 순간이 오히려 새로운 정체성이 탄생하는 기획의 시작 이 된 셈이니까.
묵직한 실버 찻잔에 담긴 홍차를 마주하는 시간은 언제나 근사하다. 여기에 의외의 별미인 바닐라 밀크셰이크나,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얹은 스콘을 곁들이다 보면 왜 이곳이 100년 넘게 요크셔의 자부심으로 불리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베티스의 테이블 위에는 영국적인 정취와 스위스의 향수가 공존한다. 메뉴판 한편을 차지한 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 Rösti가 그 증거다.
아삭하게 구운 감자전위에 훈제 연어를 얹거나, 진한 라끌렛 치즈를 녹여낸 메뉴들은 피쉬앤칩스로 대표되는 영국 음식 사이에서 꽤나 반갑고 신선한 선택지.
대표
어찌보면 그저 작은 지역의 오래된 카페일 뿐이다. 매해 정성껏 갈아입히는 윈도 디스플레이에는 화려한 명품 거리 이상의 울림이 있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절의 설렘을 선물하려는 그 정성과 진심이 만든 위대한 유산이다.
베티스에서의 휴식을 뒤로하고 닿은 곳은 근교의 소도시, Knaresborough였다. 이곳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관광지인 '마더 쉽톤의 동굴'이 있다. 모든 것을 돌로 변화시킨다는 전설과 예언가의 기묘한 서사가 숲길을 따라 흐른다. 음산한 기운을 지나 숲의 끝자락에 닿았을 때,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정점에 다다른다.
눈앞에 펼쳐진 나스보로 고가교, Viaduct의 풍경. 숲의 녹음과 강물 위로 뻗은 아치형 기찻길은 지독하게 로맨틱하다. 마침 그 위를 기차가 느릿하게 지날 때, 나는 홀린 듯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이 압도적인 미감을 혼자만 간직하기엔 못내 아쉬웠으므로.
프리츠 부처가 런던에서 주소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베티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목적지도 모른 채 기차에 올랐던 청년의 불안은 결국 100년의 헤리티지가 되었다. 경력의 단절과 새로운 시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요즘, 그의 이야기는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잘못 내린 기차역에서 비로소 당신만의 진짜 여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행운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