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궤도이탈 May 23. 2022

26. 편의점에서

  나는 편의점에서 우유를 고른다. 어 저기 사장님 이거 덴마크 우유 투 플러스 원인데 두 개밖에 없는데 더 있나요? 내가 카운터를 보며 말한다. 카운터에 있는 남자, 내가 방금 사장님이라고 부른 사십 대 초반 정도의 남자가 다가온다. 남자는 진열대를 확인하고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품 안에 우유 세 개를 들고 나온다. 하나 고르라는 듯 몸을 내민다. 나는 모닝 시리얼 우유를 집는다. 남자는 남은 두 개를 진열하고 카운터로 간다. 나도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간다. 띡. 띡. 띡. 할인이나 적립 있으세요? 남자가 말한다. 아뇨. 내가 말한다. 삼천이백 원입니다. 나는 카드를 건네고 남자는 카드를 받는다. 결제됐습니다. 남자가 카드를 건네며 말한다. 수고하세요. 내가 카드를 받으며 말한다. 아 그리고. 남자가 말한다. 사장이 아니라 알바인데요.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아 네. 내가 말한다. 편의점을 나온다.

  나는 걸으면서 그 남자를 떠올린다. 그 남자가 방금 했던 말을 떠올린다. 사장이 아니라 알바인데요. 그 남자는 어째서 그 말을 했을까. 여러 가능성을 떠올린다. 그 남자는 사장과 사이가 안 좋았을까. 그래서 자신을 사장이라 불러 기분이 나빴을까. 아니면 단지 사장이 아니라서 사장이 아니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나를 붙잡는 가능성은 그 남자는 스스로에게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손님이니 자신을 오해한다 해도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사소한 거짓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진실을 말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내가 과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나는 어떤 인간을 상상한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거짓으로 싸여 있는지. 스스로에게 진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알바인 나를 사장이라고 오해했을 때 사장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에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명예와 부끄러움과 자존심은 나를 쉽게 거짓말 하도록 한다. 진실에 강박적이진 않다. 다만 찝찝할 뿐이다. 무엇을 잊어버렸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무엇을 잊어버렸다는 것만 기억할 때처럼. 무엇을 잊어버렸다는 것마저 기억하지 못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25. 토이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