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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Oct 29. 2020

남편과 구멍 난 양말

바느질에 빠진 여인 

태어나서 바느질이라곤 중학교 가정 교과 실습시간, 그리고 임신 후 받는 각종 패키지 속에 들어있던 태교용 손싸개 키트가 전부였다. 전자는 성적에 들어가니 어떻게 해서라도 해냈지만, 후자는 시작한 지 10분 만에 내던져 버렸더랬다. 이런 내가 남편 아이 재우고 혼자 소파에 앉아 바느질하는 시간을 가장 즐기게 된 건 아마 올해 여름쯤 이였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알게 된 건 남자들 속옷과 양말은 구멍이 잘 난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입는 폴리스러운 속옷은 사실 구멍이 잘 나지 않는다. 스타킹은 원래 구멍이 잘나는데 그럼 버리고 새것을 신을 수밖에 없고, 양말은 가끔 신지만 내가 발이 작아서 그런지 좀처럼 구멍이 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의 속옷과 양말은 다 면이고 이게 구멍이 아주 자주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남편은 이 옷가지들을 버리지 않고 아주 헤질 때까지 계속 입는 것이다. 그럼 구멍은 점점 커지고,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도 서랍 안에 처박혀있다. 


'내가 한 번 꿰매 볼까?' '할 수 있어? 그럼 좋지~' 신혼 초에 시간도 많겠다 나는 중학교 때 배운 기억을 더듬어가며 남편의 구멍 난 양말과 바느질 키트를 갖고 앉았다. 어느 여행 세트에 들어있던 임시 바느질 키트였다. 동그랗게 난 구멍을 어떻게 매우면 될까... 요리조리 살펴보다 그냥 구멍을 반으로 접어 일자로 꿰매 버렸다. 내가 아는 바느질이라곤 그냥 평범하게 왔다 갔다 하는 (찾아보니 '홈질'이었다) 것이니 이 방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럼 구멍이 난 부분에 일자로 실이 볼록 튀어나오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구멍은 없어지지만 양말을 신으면 이물감이 느껴지는 단점이 있다. 남편 팬티도, 티셔츠 겨드랑이에 난 구멍도 다 이렇게 꿰매었다. 처음엔 내가 꼬매 준 양말을 잘 신고 다니던 남편도 이런 식으로 일자 줄이 세 개 나 있는 양말을 신을 때는 '이거 좀 당긴다? 불편한데' 한다. 




그러던 내게 바느질의 신세계를 알려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우리 준이를 봐주시던 이모다. 집안일, 요리 만능이던 70세 우리 이모는 바느질도 수준급이었다. 남편의 양말을 여느 때와 같이 일자로 꿰매고 있던 나를 보시고는 '자네 기우는 방법을 모르는구먼' 하시고는 본인이 가져가 쓱쓱 현란하게 바느질을 하시는데, 

바느질이 끝나자 구멍 위에 예쁜 동그라미가 생겼다 (사진은 참고용이고 이모는 남편의 양말과 같은 색의 실로 꿰매셨다). 실이 구멍 난 자리를 채워주니 이물감도 없고, 아무리 꼬매도 양말이 당 길일이 없었다. 


그렇게 구멍 메우기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그다음부터는 모든 구멍을 저런 식으로 매우기 시작했다. 이모처럼 이쁜 동그라미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구멍을 실로 채운다는데 의의를 두고 열심히 꿰맸다. 남편은 내가 바느질을 좋아한다며 색색깔의 실과 각종 도구가 들어있는 커다란 바느질 셋트를 사주었다. 







이모가 그만 두시고,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휴직을 하고, 복직을 하고... 그러면서 남편과 나는 많이 싸웠다. 내가 이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구나에 놀라며 하루하루 우리의 싸움은 한계치를 갱신했다. 그 즈음 나는 남편의 구멍 난 옷 매우기를 그만뒀다. '구멍 난 거 그냥 버리고 새로 사면 되지 요즘 세상에 누가 저렇게 한다고' 남편도 꼬매 달라는 말이 없고, 그렇게 한동안 건조대에는 구멍 난 옷가지들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아이가 잠들고 혼자 소파에서 빨래를 개다가 또다시 눈에 밟히는 양말 구멍. '지겹게도 안 버린다 정말.'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길거리에서 산 천 원짜리 줄무늬 양말이다. 하필이면 구멍 모양이 꿰매기 딱 좋은 작고 동그란 구멍이다. 나는 커다란 바느질 키트를 가져와 양말과 비슷한 색의 실을 골라 가장 작은 바늘귀에 꿴다. 먼저 구멍 주위를 실로 단단히 감아친다. 이 과정을 촘촘히 해놓아야 구멍을 더 예쁘고 촘촘하게 매울 수 있다. 감아친 실 위에 다시 실을 걸어가며 구멍을 좁혀간다. 양말을 뱅글뱅글 돌려가며 매우다 보면 어느새 실이 다 없어지고 간신히 매듭을 지어 마무리한다. 앞으로 봐도 뒤집어봐도 탄탄하니 예쁘다. 


이제는 빨래를 갤 때마다 어디 꿰맬 구멍 없나 남편 팬티를 양말을 낡은 티셔츠 겨드랑이를 들춰본다. 꿰맬 옷가지가 쌓이면 속에서 살그머니 신이 난다. 빨리 준이 재우고 나 혼자 이거 꿰매어야지. 남편 서랍에는 내가 꼬매 준 속옷이 반, 그리고 반은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속옷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가지런히 쌓여있다. 이게 우리 남편이다.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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