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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Nov 13. 2020

집에 대한 생각

올 한 해는 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부동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나가고 있는?) 한해이기도 하고, 이사를 하기도 했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기도 한 것 같다. 부동산 카페에 내가 관심 있는 지역을 즐겨찾기 해 놓고 틈틈이 들어가 동네 분위기를 살피거나, 새로운 지역을 가면 호갱 노노 앱을 켜놓고 이 동네는  매매가가 얼마나 하나 체크한다. 이사 간 친구네 집 인테리어를 구경가기도 하고, 그 김에 그 동네는 살기가 어떤가 휙 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지난 주말 아이 어린이집 친구네 집을 초대받아 놀러 가게 되었다.


직장어린이집이라 아이 친구 부모를 내가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해 아이가 들어간 반에는 나와 4년 전쯤에 잠깐 같은 팀에 있었던 여자 동료 C의 딸이 있었다. 아이들이 같은 반이 되어 인사를 나누며 그 친구네가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 간 걸 알게 되었고, 그 집이 마침 넓은 마당과 놀이터를 가진 타운하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C! 저 가족들이랑 놀러 갈게요!' 그리고 햇살이 좋던 지난 주말, 이름도 생소한 'H 동산'이라는 주소를 치고 우리 가족은 친구 집 나들이를 떠났다.


코로나와 재택근무로 대형 평수/단독이 앞으로는 인기 있을 거야, 근교에 타운하우스들이 많이 생긴다던데 그런 곳인가, 커뮤니티 시설이나 공용부 관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저런 호기심을 갖고 한 30분을 차로 달렸을까. 길 가에 아파트들이 없어지고 이런 곳에 집이 있나 싶은 곳까지 들어갔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경비실과 차단기를 지나 또 한참을 차로 들어갔다. 저수지를 지나고, 넓은 잔디밭과 놀이터를 지나자 친구네가 사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타운하우스가 아니었다.


'준이야 어서 와! 보고 싶었어!' 친구 딸은 깜찍하게 얘기하며 준이 손을 꼭 잡는다. 친구 C는 편안한 츄리닝 차림에 운동화, 그의 남편은 배낭을 매고 렌즈가 커다란 카메라 한대를 목에 걸고 있었다. 친구 딸은 준이 손을 잡고 초등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아마 여름 내내 푸르렀을 잔디밭은 바스락거리는 누런색 마당으로 변해있었고 그 위에는 빨강 주황 갈색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잔디밭 주변엔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담담하게 서 있었고, 알록달록 물든 산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잔디밭을 달리며 준이는 두 번 정도 넘어졌는데, 벌떡 일어나 다시 친구를 따라 달려갔다. 잔디밭을 지나 경사로를 올라가니 산자락 아래에 나있는 산길이었다. 산길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가는 아이를 만났는데, 친구 가족은 그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를 소개했다. ‘E 친구네가 우리집에 놀러왔어’



산길을 지나 삐그덕 거리는 오래된 나무다리를 지나자 저수지가 나왔다. 저수지 물은 녹색에 황토색을 풀어놓은 듯했고, 그 색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단풍과 아주 잘 어우러졌다. 저수지를 지나고 다시 잔디밭을 지나고 놀이터로 돌아오자 친구 남편은 등에 매고 있던 배낭을 풀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보리차와 어른들이 마실 구수한 작두콩차가 보온병 두 개에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보리차를 꿀떡꿀떡 마시고는 놀이터로 달려갔다. 나는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작두콩차를 훌짝이며, 비현실적인 이 공간을 이해하려 친구에게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 건넸다. 이 곳은 정말이지 시간이 멈춘 듯이 아름답고 고요한 곳이였다.

  


바람이 차가워져 집으로 들어가자 친구의 친정 부모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친구 어머님은 감을 예쁘게 깎아 내어 주셨고, 친구 부부는 갓 볶은 커피콩을 한가득 갈아 진한 커피를 내려주었다. 한 세 시간쯤 이야기가 이어지자, 친구 어머님은 고구마를 구워 둥근 양은 쟁반에 내어 주시고 들어가셨다. 그동안 아이들은 잡기 놀이를 하다, 자동차 놀이를 하다, 거실 한편에 하얀 천으로 가려 놓은 친구 딸 방에 들어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놀았다.


저녁시간이 되어 집에 갈 시간이 되자 친구네 가족은 우리와 같이 또 잔디밭까지 걸어 내려와 배웅해 주었다. 이 시간에는 아이들이 나와 노는 시간인지 놀이터에 몇 가족이 나와 있었고, 친구 딸은 그 친구들에게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했다. 아마 그중 한 아이의 이름이 우리 준이과 같았던 것 같다.  




우리는 아파트를 하나 분양 받았는데, 입주를 앞두고 입주민 카톡방이 터져 나가는 중이다. 임대아파트 반대를 위한 서명, 1인 시위, 인터넷 댓글 동원에서부터, 타 주민들이 아파트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펜스 설치, CCTV 설치 논의가 매일같이 올라오고, 아파트 로고가 잘 안 보이니 옮겨 달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가 최고급 브랜드라는 걸 알릴 수 있게 카페에서 아파트 이름을 이렇게 써야 한다 등등 매일 수백 개의 카톡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민간 임대 아파트로 확정되지 않은 분양가 때문에 입주민들이 싸우고 있는 아파트다. 분양가를 얼마로 가져가서 시행사와 협상해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대표단이 협상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 당신은 부동산 업자가 아니냐. 크고 작은 말다툼이 생겼다, 빈정상한 사람은 카톡방을 나갔다... 그러는 중이다.


집이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를 지키고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집이 가진 진짜 의미를 잊게 되고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손녀 친구 가족을 맞아 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준이의 조끼에 그려져 있는 원숭이를 보며 내 딸이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말해주는 친구네 앞집 아저씨, 친구가 놀러 와 좋겠다며 한마디 하고 지나가는 동네 할아버지. 그리고 조금만 나가면 마스크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와 잔디밭.  


집에 대하여 많은 생각이 드는 주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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