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의 스타트업 투자 이야기 꾸러미
적어도 1주일에 하나 정도의 글은 최소한 써서 발행을 하려고 하는데,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예기치 않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글쓰는 것도 쉽지가 않아서 글이 많이 밀려 버렸습니다. 그래도, 이번 주말을 넘기면 안되겠다 싶어서 최근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를 중점적으로 해볼까 합니다.
지난 10월 4일에 벤처비트에 재미있는 제목의 글이 하나 소개되었습니다.
"When Lean startups can be dangerous"
스타트업 경영의 사실 상 표준 방법론이 되다시피한 Lean Startup은 2011년 Eric Ries의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면서 한 마디로 대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책 이전에 Steve Blank가 스타트업과 관련한 강의 시리즈를 비디오로 공개하기도 하고, 스탠포드 대학의 ecorner(Entrepreneurship Corner)에도 2008년부터 강의를 통해 여러 차례 비슷한 강의 시리즈들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Steve Blank가 포함된 스탠포드의 강의를 많이 듣고, 이를 제가 학교에서 강의할 때에도 많이 활용했기 때문에 Lean Startup 열풍에는 Steve Blank의 역할도 컸다고 봅니다.
여튼 Lean Startup은 대세고 스타트업 전략이나 경영에 대해서는 거의 표준이나 다름없게 여겨지고 있어서, 벤처비트의 기사에서 lean startup을 경고하는 제목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파격적인 느낌이 듭니다. 아래의 내용은 벤처비트의 기사에서 많은 부분 따온 부분들이 있으므로, 저의 글 이외에 벤처비트의 원문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Lean Startup은 이해하기도 쉽고 수행하기도 쉬운 단순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나 스타트업의 특성과 대체로 잘 맞지요. 무엇보다 빠른 실행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라서, 끝없는 분석과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지도 않고, 개발을 할 때에도 전통적인 waterfall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되며, 가볍게 시작해보는 것이니 커다란 인프라에 대한 고려없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6단계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Build - Test - Measure - Learn - Pivot - Scale
실제로 이 방법을 따라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창업을 하였고, 그 중에 유니콘으로 성장한 커다란 성공사례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거의 Lean Startup이 종교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유행입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이 없듯이 이 방법론에 대한 과신은 금물입니다.
특히 헬스케어나 금융부분과 같은 종류의 산업에서는 잘못된 수준을 넘어서서,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판단에 대한 대가가 크거나, 고객들의 반응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Lean Startup 방법론에서는 최소의 기능을 구현한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가지고 시장을 바로 테스트합니다. 그래서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능성을 타진하지요. 일부 제약사들이나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서 MVP를 만든 다음에 고객반응을 테스트했지만, 결과는 거의 대부분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헬스케어 소비자들의 특징때문에 그렇습니다. 헬스케어 분야에는 MVP의 "M"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헬스케어 관련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제대로된 의학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거나,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한 사람의 환자 또는 고객에게 만족할만한 결과를 제공한다는 것이 수백 만명의 환자나 고객에게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헬스케어 소비자들은 '싸구려'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시장에서는 "가격이 싸니까 봐준다"는 것이 통용되지만,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공짜라도 그 말이 잘 통용되지 않습니다. 환자들은 사용자들처럼 잘못된 것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존재가 아니고, 효과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서는 여전히 Lean Startup의 방법론이 맞는 것들이 있겠지만, 상당 수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다른 산업 중에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 금융 분야의 스타트업도 그다지 Lean Startup이 잘 먹히지 않는 분야입니다. 이유는 이 분야는 소비자들이 잘못하면 큰 손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조금 덜 내는 것에는 소비자들이 관대해도, 손해를 조금이라도 보는 것에는 무척이나 민감하다는 것은 행동경제학을 조금이나마 공부한 사람들은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인공지능 등을 이용한 소위 "Robo-advisor"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빨리 상용화되지 않는 것이지요 ... 물론 규제 이슈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규제 이슈 보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본질적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위험관리나 보안 또는 라이센스 등이 필수거나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산업의 경우에는 소위 위험-이득(Risk-Benefit) 분석이 중요하게 되는데, 위험-이득이 중요한 산업들은 대체로 Lean Startup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림은 없을 듯합니다.
가장 쉽게 예를 들어서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케이스를 비교해 보도록 합시다. 요즘 뜨는 소위 음식배달 관련한 비즈니스를 시작한다고 합시다. 음식배달이 쉬운 것 같아도 신선도도 유지해야 하고, 부패하면 안되며, 제 시간에 배달이 되어야 하고, 포장에도 다양한 기술이 들어가는 무척이나 복잡한 서비스입니다. 만약 배달된 음식이 늦게 오거나, 너무 차갑거나, 맛이 없으면 아마도 소비자들에게 여러 가지 쓴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죠? 고객의 피드백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테스트를 하면 됩니다. 아마도 이렇게 서비스를 개선한다면, 소비자들은 발전해나가는 서비스 프로세스를 보면서 자신이 참여했다는 느낌도 들고 자신의 피드백이 충실하게 고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되려 충성스런 고객으로 변해갈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서비스를 헬스케어 산업에 적용해 봅시다. 예를 들어, 의사를 추천하고 이들이 환자들에게 연락하게 만드는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환자가 아픈데, 의사가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연락을 하거나, 진료를 받았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다거나, 진료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피드백을 받는 것과 동시에 소비자를 잃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단순 재구매가 일어나기도 어렵거니와 환자의 입장에서는 신뢰가 생명인데 이를 깨버린 서비스에 대해 음식배달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처럼 Lean Startup 방법론에 대한 맹신은 잘못된 것이고, 심지어 정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할 것들이 있는데, 오늘은 글이 길어졌으므로 다음 주에 한 차례 더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