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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원 Sep 02. 2016

홍대 최고의 버스킹 밴드 분리수거의 보컬이 되기까지

페친으로 세계일주_분리수거 김석현

  “여기 계신 분들 중에 게임을 해서 저를 이기면 어마어마한 상품을 드립니다.”


  사람 많은 주말 홍대. 퇴근길 교통체증보다 더 심한 홍대의 인파를 뚫고 출구로 나왔더니 턱에 수염 많은 한 친구가 확성기를 들고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밤의 분위기에 들떠있는 행인들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를 슬쩍 쳐다보고 '뭐야?'하는 표정으로 지나치는 행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사람들을 웃기고 있는 그에게 난 작은 감동을 느꼈다. 난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을 멈추고 감동을 담아 힘껏 박수를 치며 그를 응원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오! 거기 덩치 큰 남성분 여기 앞으로 나오세요. 큰 상품이 있습니다.”

  나는 싫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손짓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나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그는 내 허리춤에 만보기를 채웠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이 분이 몸을 흔들어서 저보다 만보기 횟수가 더 많이 나오면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아, 젠장 나오지 말걸 괜히 나왔다.'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하나, 둘, 셋”하고 외치는 그의 카운트에 맞춰,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었다. 기왕 앞으로 나온 거 얼굴 한 번 팔리고 선물이나 받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흔들었지만, 이 자리를 위해 수없이 몸을 흔들었을 그의 현란한 몸동작은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지고 말았다.


  5년 전, 나에게 창피한 추억을 만들어 준 그의 이름은 김석현. 지금은 인기 버스킹 밴드 분리수거의 보컬로, 홍대에서는 분리수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매번 홍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할 때마다, 수백 명의 팬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지금은 정말 인기 있는 밴드의 보컬이지만 확성기를 들고 홀로 공연을 하던 그를 기억하는 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실제 분리수거 홍대 버스킹 공연 >

  사실, 만보기를 열심히 흔들고 돌아가던 길에 그 친구도 얼마 안가 공연을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지만 그만큼 길거리 공연 바닥은 힘든 세계였다. 하나가 나타나면 하나가, 아니 둘이 사라질 정도로 살아남기 힘든 세계. 그들이 그만두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어느 분야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 현실. 그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현실이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에는 예외가 있다. 당장은 배가 고프지만, 당장은 미래가 막연하고 불안하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친구들이 있다. 석현이도 그랬다. 그는 내가 홍대를 갈 때마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변함없음이 결국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길거리에 흘린 땀만큼 사람들의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 근처에서 하던 공연을 더 널찍한 홍대 놀이터라는 무대에서 하게 됐고, 얼마 안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걷고 싶은 거리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무대뿐만이 아니라 팀도 여러 번 바뀌었다. 솔로에서 듀엣으로, 듀엣에서 다시 솔로로, 솔로에서 분리수거 밴드라는 팀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변화한 건 공연 스타일이었다. 확성기를 들고 홀로 공연을 할 땐 그의 전공인 개그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더니, 노래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때론 감동을 주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그와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누군가가 변하는 모습을 이토록 자세히 아는 것도 신기한 사실이다. 자주 본 것도 아니고 대략 3달에 한 번씩 그를 본 게 전부이지만, 내가 그를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그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실제로 만나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한 가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커피를 마시자며 메시지를 보냈더니 잠시 후, 그로부터 이렇게 답장이 왔다.  

  “저기.. 커피 말고 다른 거 마셔요.”  

  커피 말고 다른 건, 다름 아닌 술이었다. 평일이라 난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지만 가볍게 소주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가 자주 찾는다는 단골 술집에서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가 초대한 홍대의 한 지하 술집에 들어갔더니, 한 명이 아니라 4명이 앉아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 석현이가 데려온다던 지인들이 4명으로 불어나버린 것. 나는 직감했다. 오늘 술자리가 길어질 거라는 걸. 그리고 내일 아침 숙취에 시달릴 거라는 걸.

  첨에 낯선 사람들이 있어 데면데면했지만 술은 대화의 윤활제라고 했던가. 한잔 두 잔 술이 들어가니 다들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자리가 편해졌고, 자연스레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반쯤 취한 상태로 그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널 겉으로 보기엔 되게 유쾌하고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론 힘들 순간들도 많았을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만두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석현아.”

  갑자기 던진 진지한 질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 사실 힘들지 않았어요. 물론 남들보다 못 먹고 못 벌어서 배고픈 시절도 있었지만 그럼 뭐 어때요.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거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이렇게 사는 게 저는 정말 즐거워서 힘들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어요. 이런 일을 하면 걸리는 게 몇 가지 있긴 해요. 첫 번째 돈, 두 번째 불투명한 미래. 근데 이것들은 저한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일단 돈. 물론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았죠. 근데 지금은 분리수거가 많이 알려지면서 행사도 많이 들어오고 돈도 부족하지 않게 벌고 있어서 어느 정도 해결됐어요. 그리고 두 번째, 불투명한 미래. 이건 뭐 저뿐만 아니라 다들 불투명한 거 아닌가요? 하하. 근데 그런 확신은 있어요. 이걸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성공하겠다는 그런 확신. 그래서 불안도 저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그가 지금에서야 유쾌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막연하고 불안한 길거리 버스킹의 세계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는 길이 마냥 쉬웠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힘듦은 불행과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형, 솔직히 말해보세요. 힘들죠?”

  나도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후배 한 명이 힘들다는 답을 바라기라도 하듯 내게 물었다. 난 조용히 웃으며 이야기했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힘들 거라고 말하지만 난 진짜 안 힘들어. 이거 하는 게 힘들면 벌써 그만뒀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이 서른에 번듯한 직장 하나 없는 내가 꿈 톡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는 게 후배 눈에는 힘들어 보였나 보다. 하지만 나는 꿈 톡이라는 단체를 이끌면서 청년들의 눈을 마주 보고 소통하는 일 자체에 힘듦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단기 알바를 하거나 퇴사 직후에 일을 구하지 못해 힘들었던 시절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때마다 꿈 톡은 나에게 버팀목이었다. 청원경찰을 7개월 동안 하면서 체력이 바닥을 칠 때도,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남들의 무시를 살 때도 이런 고난들 때문에 꿈 톡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이 따위 것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버텨낼 수 있었다.


  사람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좋아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이 상황을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 이성에 대입해보면 굉장히 심플하게 이해가 된다.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면 그 이성 외에 다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이성을 만나면서 발생하는 기회비용들이 늘어나지만 그 따위 것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쓰는 시간, 돈, 수고로움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저 그 이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고 즐겁다.

  나도 그랬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라 생각하는 일을 할 때엔, 남들이 역경이라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오히려 감사함을 느꼈다.

  분리수거의 보컬로 지내온 석현이도 똑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 테고, 그 길을 사랑했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만약에 자신이 걷고 있는 길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후회가 있었다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술이 계속해서 들어갔다. 그 자리엔 사진작가, 기타리스트 등 석현이의 지인들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가 자신이 사랑하는 길이 있었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 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하는 것이 꿈이라는 것. 무언가를 이루고 확장하고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지속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마음이 진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사랑하는 연인이기에 그 사람과 평생 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성취를 하기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혀가 반쯤 꼬인 상태로 석현이에게 물었다.

  "섥현아, 넌 행붝이 뭐라고 생각하니?"

  석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형, 저는요. 행복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렇게 형과 술을 마시는 것도 누구는 그냥 술을 마신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에게 집에서 먹는 집밥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만, 군인이 전역을 하고 집에 와서 처음 먹는 집밥을 먹는 사람에겐 그 집밥이 엄청난 행복인 것처럼요. 일상에서도 자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하면 그게 곧 행복 아닐까요? 저는 행복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행복을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온 석현이. 그와 함께한 자리라 그런지 술자리 또한 굉장한 지속성을 가졌다. 새벽 2시. 거나하게 취해 택시를 탔다. 다음 날 출근이 무슨 대수랴. 좋은 사람, 좋은 대화, 행복이 넘쳤던 시간을 보냈다면 그게 전부인 거지.

  확성기에서 홍대 최고의 버스킹 밴드가 되기까지. 앞으로 홍대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버스킹 밴드가 될 때까지.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석현이는 행복을 선택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에이, 형 힘들기는요. 이것 때문에 사는 건데요. 전 행복해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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