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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원 Sep 21. 2016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페친으로세계일주_채자영

 '프리젠터? 프레젠테이션 회사 대표인가?'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다. 그 전까진 내가 관심있는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만 메시지를 보냈었다. 근데 이상하게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궁금해서 들어가 본 그녀의 프로필엔 프리젠터라는 직업명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녀가 프레젠테이션 회사를 설립한 대표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 같은데 한 기업의 대표가 되어있는 그녀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주저 없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자기도 이 프로젝트에 꼭 참여해보고 싶었다며, 지금까지 돌아온 반응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부탁해 응해줬다. 이제 제법 페친으로 세계일주를 아는 사람도 생겨가는구나 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녀와 약속 날짜를 잡았다.

  "또각, 또각, 또각"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있던 나는 구두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봤다.

  '헉, 뭐가 이렇게 예뻐.'

  뒤를 돌아봤더니 굉장히 커리어 우먼스러운 미녀 한 분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집에 널브러져 있는 맨투맨 티셔츠를 대충 입고 온 나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빛나는 외모에 약 3초 동안 약간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다. 근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첫인상과는 달리 동네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도도할 것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털털한 성격에 호쾌한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친구였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동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반가운 마음에 주먹을 맞부딪쳤고, 만난 지 5분 만에 말을 놓고 오래된 친구마냥 수다를 떨었다. 수다 중 알게 된 사실은, 그녀는 프레젠테이션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그저 한 기업의 프리젠터라는 직무를 맡은 회사원이라는 것이었다.


  "자영아, 근데 프리젠터라는 게 정확히 뭘 하는 거야? 난 이런 직무를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그녀가 대답했다.

  "쉽게 말하면 기업과 다른 기업 또는 기관이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경쟁 입찰을 하게 되는데, 이때 한 기업을 대표해서 피티 발표를 하고 수주를 따내는 것이 프리젠터라는 직업이야. 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기업의 대표 프리젠터인 거고. 한 번 계약을 맺으면 지속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니까 건당 몇 천, 많게는 몇 억이 왔다 갔다 하는 현장이지."

  한 마디로 자영이는 살벌한 경쟁 현장의 일선에 있는 선봉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중압감 넘치는 일을 굉장히 즐기고 있었다.

  "압박감 장난 아니겠는데? 막 중압감에 시달리고 그러진 않아?"

  "물론 압박감이 없을 순 없지. 근데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 그리고 내 역량에 따라 결과가 바로 나타난다는 사실도 너무 좋구.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났는데, 그 4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즐겁게 일했어."

  자신의 직업을 말하는 내내 웃음 가득한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직장인 중에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은커녕 자신의 직업을 욕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정말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지난 3년간 나에게 맞는 직장 찾기에 계속 실패해왔던 나는, 그녀가 어떻게 하다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찾았으며 왜 그 직무를 택했는지 궁금해졌다.

  “참 신기하다. 사람들은 자기 직장 욕하기에 급급한데. 넌 되게 네 일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어떻게 하다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갖게 됐어?”

  그녀가 대답했다.

  “나도 처음부터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가졌던 건 아니야.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방황하느라 정말 힘들었어.


  그녀는 나에게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쭉 이야기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학생 시절, 국문과를 전공하던 도중 언론 쪽에 관심이 생겼고 복수전공을 하며 PD와 아나운서 사이에서 고민했었다. 운이 좋게도 그녀는 둘 모두를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했던 광고 PD와 아나운서 모두 상상과 현실은 너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좋아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했고, 무언가를 창작하기 위해서 광고 PD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둘 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았다.

 사람보다는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빈도가 많았던 아나운서를 하며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고, 연출이 아니라 전체적인 디렉팅을 하는 광고 PD의 일은 광고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잘못이었다. 광고업은 CF 감독이 전체 연출을 책임진다. 또 밤낮이 바뀐 힘겨운 체력전에서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남들이 선망하는 두 직장 모두 몇 달을 못 버티고 뛰쳐나왔다. 그런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끈기가 없다며 꾸짖었고, 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치열하게 방황했다. 그리고 방황 속에서 나는 언제 행복한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치열하게 방황하는 과정 속에서 물음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하나 둘 정의 내렸고, 그 과정이 끝난 후에 자연스럽게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내게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엔 행복이 뭘까. 도대체 행복은 뭘까. 이런 질문을 나에게 계속 던졌어. 근데 답이 잘 나오질 않는 거야. 그래서 질문을 바꿔봤어. 난 언제 행복할까로. 1번부터 10번까지 리스트를 쭉 써 내려가 봤어. 근데 참 웃긴 게, 한 3번까지는 쉽게 쓸 수 있었는데 그 뒤로는 너무나 쓰기가 어려웠던 거야. 내가 언제 가장 행복한지, 무슨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한지 끊임없이 고민했지. 그리고 10번까지 써 내려갔을 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 것 같다는 기분이었어. 내가 언제 행복한지 깨달았고,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더라구."

  참 신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치 내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자영이의 과거에서 내 과거가 보였다. 나 또한 퇴사 후에 깊은 방황을 했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쓰디쓴 조언과 충고를 받았다. 내 생각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 처방하는 반쪽짜리 조언과 충고.



  “주원아, 넌 왜 그렇게 끈기가 없냐. 3년은 해봐야 그게 너한테 맞는지 아닌지 알 거 아냐.”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백수로 있는 나에게 교수님은 끈기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교수님뿐만 아니라 친구, 친척, 부모님도 모두 똑같았다. 그놈의 끈기. 모든 일에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 귀에 염증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 내가 퇴사를 했던 진짜 이유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왜 퇴사를 했는지, 퇴사 후 불안에 떨 수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왜 굳이 퇴사를 했는지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겐 그저 연예계 가십거리가 그렇듯, 내가 퇴사를 했다는 사실만 중요했다. 그것만으로 나를 이런 놈이다, 저런 놈이다 평가하기 바빴다.

  난 집이 지방이라 서울에서 혼자 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 있다. 바로 월세다. 매달 초 항상 월세를 지불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매달 초에 지불할 돈이 없으면 생존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퇴사라는 것은 곧 내 생존의 위기와 직결되곤 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서 3달이 지났을까. 얼마 모아두지도 않은 돈이 통장에서 깔끔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순간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다음 달 월세를 낼 수가 없겠구나.’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하거나 취업을 해서 일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단기 알바 자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 속에서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행사장에서 단기 알바를 하고 병원에서 남들이 선뜻하지 못하는 알바까지 해가며 돈을 벌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남들이 다들 취업할 나이에 알바를 하고 있는 모습이 한심했었나 보다. 그들은 내가 왜 퇴사를 하고 알바를 하고 있는지, 내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알바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만 흥미를 보였고, 그것을 무슨 내 신분처럼 생각했다.

  심지어 내가 한 때 존경했던 교수님은 나에게 “넌 남자가 이렇게 줏대가 없어서 무슨 일을 하겠냐.”라며 호통을 치셨다. 끈기 없고 줏대 없는 찌질한 스물여덟 살의 대한민국 청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고 나니 그들은 날 뚝심 있고 강단 있는 30살의 대한민국 청년으로 평가했다. 주변에서 무엇 하나를 이렇게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은 드물다는 칭찬을 들었고, 가치를 향해 끈기 있게 나아가는 돈키호테라는 소리를 들었다. 우스웠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 내 삶의 방향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던 작은 성과들이 수면 위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을 뿐.

  순식간에 변하는 그들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정말 하찮은 것임을 깨닫게 했다. 더욱 우스운 건, 수면 위로 보이는 성과들이 사라지면 그들의 태도는 또다시 변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나를 끈기 없고 실패한 부적응자로 또다시 평가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리저리 방황하며 숙고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볼 때 방황하는 사람은 어느 곳 하나 진득하게 정착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로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들이 놓치고 있는 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방황의 속에서 겪는 숙고의 시간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방황을 깊게 하는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자기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색하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점점 더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지금 자신은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자영이 또한 남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방황했기에,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거 아닐까?

  나 또한 지독한 방황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수천 번은 던졌던 것 같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에 있어 행복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나를 너무나 괴롭게 했고, 답이 없는 질문에 계속해서 지쳐갔다. 하지만 쉽게 끝내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책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했다.

  덕분에 지금은 더 이상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지 않는다. 날 너무나 괴롭게 했던 그 질문들은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만들어줬고, 그 방향을 따라 지금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그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친구들 중에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방황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나긴 방황과 고민 끝에 만들어낸 스스로의 길은 앞으로의 여정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훗날 방황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겠지.

그때 방황하길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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