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별 ‘인공지능’ 용어를 묻기 위한 출발점
『인공지능과 지능의 이름들』 서문(0편) 이름이 사유를 만든다
―언어별 ‘인공지능’ 용어를 묻기 위한 출발점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뉴스의 제목에서, 정책 문서에서, 일상 대화에서 이 말은 이미 설명이 필요 없는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이 말은 과연 충분히 이해된 상태로 사용되고 있을까. 아니, 더 근본적으로 묻자면 이 말은 어떤 길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도착했을까.
이 연작은 기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기술을 가리키는 이름, 곧 언어에서 출발한다. 같은 기술을 가리키는데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는 서로 다른 ‘지능’을 말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는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며, 이름은 사유의 방향을 미리 정해 놓는다.
출발점을 분명히 하자.
오늘날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개념은 영어 **Artificial Intelligence(아티피셜 인텔리전스)**에서 비롯되었다. 이 용어는 1956년 다트머스 회의를 전후하여 등장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컴퓨터를 계산 도구가 아니라 지능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기계로 선언하고자 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기술의 완성보다 이름이 먼저 정해졌다는 점이다. ‘지능’이라는 말을 학문 표제에 올리는 순간, 연구의 질문과 방향은 함께 규정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학문 표제는 각 언어로 옮겨질 때, 설명문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 명사로 굳어 들어간다. 이 지점에서 언어별 선택이 갈라진다.
일본어는 이를 **人工知能(じんこうちのう진코–치노–)**로 옮겼다. 여기서 핵심은 ‘지능’에 해당하는 한자로 **知(알 지)**가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서구 철학·심리학 번역 전통 속에서 지능은 이해, 인식, 학습의 문제로 다뤄져 왔고, 그 축적된 감각이 ‘知能’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이후 일본 사회에서 인공지능 담론은 교육, 로봇, 학습 시스템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해하는 기계’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정착했다.
중국어는 이를 **人工智能(réngōngzhìnéng런궁즈넝)**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선택된 글자는 **智(슬기 지)**다. 이는 단순한 앎이 아니라 판단, 운용, 통솔의 의미를 포함한다. 이 용어는 일본을 경유해 들어왔으나, 중국 사회에서는 국가 정책과 산업 전략 속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 결과 ‘智能’은 기술 용어를 넘어 통치, 플랫폼, 자동화 담론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한국어의 ‘인공지능’은 이 두 흐름을 모두 거치며 정착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知와 智의 차이는 표기 속에서 사라졌다. 초기에는 ‘인공 지능’이라는 설명적 띄어쓰기 표현도 사용되었으나, 점차 하나의 고유 명칭인 ‘인공지능’으로 굳어졌다. 현재 공적 기준과 실제 사용 모두에서 붙여쓰기 형태가 사실상 표준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름은 이렇게 고정되었다. 그러나 의미까지 고정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학습 모델, 추천 시스템, 자동화된 판단, 생성 도구까지 모두 포괄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지능이고 무엇이 자동화인지, 어디까지가 판단이고 어디서부터가 도구인지가 흐려졌다. 이름이 넓어진 만큼, 질문은 오히려 사라졌다.
이 연작이 던지는 중심 질문은 단순하다.
왜 같은 기술을 가리키는데, 언어마다 서로 다른 ‘지능’을 말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차이는 각 사회의 기술 수용 방식과 어떤 미래를 만들고 있는가.
이 0편은 답을 내리는 글이 아니다. 출발선을 긋는 글이다. 기술의 시대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말을 살펴야 한다. 이름은 생각보다 오래 남고, 생각보다 멀리 간다.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은 곧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 연작은 그 신뢰의 언어를 하나씩 되짚어 보기 위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