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2017.09.17 기고문] 통상임금 재판 숫자게임
http://news.joins.com/article/21942526
노조 소송 없어도 회계 장부엔 충당부채 미리 올려야
국내 근로자 임금은 기본급 외에 각종 수당·상여금·성과급 등 다양하고 복잡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수당이나 상여금 가운데 어떤 것은 이른바 통상임금에 포함되어 있고, 어떤 것들은 빠져 있다.
통상임금이란 회사가 지급하는 근로제공에 대한 보상이다.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을 통틀어 말한다. 통상임금 범위가 중요한 이유는 각종 초과 근무수당(연장·야간·휴일 근무수당)이나 퇴직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돼서다. 통상임금 기준으로 시간당 임금이 1만원이라면 야간근무에 대해서는 시간당 1만5000원을 지급해야 한다. 회사가 거의 정기적으로 지급해 오던 보너스(상여금)가 통상임금 범위에 빠져 있었는데, 이를 포함시킨다면 근로자들이 받는 초과 근무수당이 늘어난다.
기아자동차(기아차) 노동조합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의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됐던 상여금을 포함시켜 이전에 덜 받았던 각종 수당들을 지급해 달라는 게 주장이다. 지난 8월말 1심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인 노조 측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상여금과 중식비가 통상임금에 해당하기 때문에 회사는 근로자에게 4223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회사가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즉각 항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4223억 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3년 2개월간 소급분에 대한 것이다. 추가로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의 3년분에 대한 소송이 이미 제기돼 있다. 또 ‘2014년 11월부터 2017년 현재’까지 2년10개월분에 대해서도 노조 측의 소송 제기가 거의 확실하다. 결국 이번 판결말고도 추가로 5년10개월치, 추정금액으로는 약 5800여억 원의 부담을 회사가 추가로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번 1심 판결액까지 포함하면 총 1조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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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판결 전 충당부채 설정 안 해
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판결 전인 지난달 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금속노조 산하 노조원들이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업계에서는 기아차가 이번 통상임금 판결과 관련하여 3분기 회계처리를 어떻게 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소송 결과에 따른 부채(통상임금 충당부채)를 재무상태표에 반영하고, 손익계산서에 비용처리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회사가 원재료를 외상으로 구입해 매입채무가 발생했다고 하자. 아니면 기계장치를 외상으로 사고 미지급금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채는 거래 상대에게 지급해야 할 시기와 금액이 확정되어 있는 부채다. 충당부채란 이와 달리 지출이 발생할 시기와 금액이 불확실한 부채를 말한다. 회계기준에서는 충당부채로 잡을 수 있는 요건을 세 가지로 정해 놓았다. ‘과거 사건이나 거래 결과로 현재 의무가 존재하고, 이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 유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의무 이행에 소요되는 금액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아차 통상임금 재판은 계속 상급심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지출시기나 금액이 불확실하다. 그러나 1심 판결에 따라 수당을 추가적으로 현금 지급해야 할 의무가 생겼고, 그 판결금액이 4223억 원으로 정해졌으며 이에 근거하여 추가소송에 대해 지급해야 할 금액 5800억 원도 어느 정도 정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충당부채 금액으로 1심 판결분 4223억 원만 3분기에 반영할 것인지, 추가소송 예상분 5800여억 원까지 고려하여 모두 1조원을 반영할 것인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5800억 원에는 이미 제기되어 있는 소송에 대한 예상금액과 앞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이는 소송에 대한 예상 금액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충당부채를 설정하는 사례들을 보면 소송의 1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일정금액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다. 또 1심 판결 전에는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심에서 패소하여도 판결금액 중 일부만을 분기마다 나눠 반영하는 사례도 있다. 기아차는 1심 판결 전에는 통상임금과 관련한 충당부채를 전혀 설정하지 않았다. 올 6월말 사업보고서(2017년 반기보고서)의 재무제표 주석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판매한 자동차에 대한 무상수리 보증용(판매보증충당부채)으로 3조4796억 원, 기타 충당부채로 352억원이 장부에 올라 있다. 기타 충당부채는 통상임금과 관련한 금액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재무제표 주석에서 회사는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며, 소송 결과 및 그 영향은 예측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위아는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15년말 사업보고서에서 이미 충당부채를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재무제표 주석에서 충당부채 항목과 관련한 표를 보면2014년 말엔 전혀 없던 기타 충당부채가2015년 말 새로 생겼다. 회사는 이에 대해 “2015년 말 현재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하여 계상한 충당부채는 886억 원”이라고 재무제표 주석에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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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회계법인 충돌 가능성
한편, 기아차는 3분기 통상임금 충당부채로 1조원을 모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보수적으로 회계처리하겠다는 것인데, 회사 감사인(한영회계법인)과의 협의과정에서 변동이 생길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회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회계업계에서는 이번 통상임금 판결과 관련한 이슈들이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소송이 없는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급여항목에 대해 앞으로 소급지급할 금액을 추정하여 충당부채로 인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소송에서 패소한 회사와 급여규정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면 실제 소송 패소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충당부채를 재무상태표에 표시하지 않아도 될까? 다수의 회계전문가 입장은 근로자의 추가임금 청구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근로자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소급 추정액을 충당부채로 표시해야 한다는 쪽이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충당부채 반영과 관련하여 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과 회사 간 의견충돌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근로자의 퇴직금 변동과 관련한 회계처리다. 통상임금이 변경되면 근로자들이 퇴직 시 받게 될 퇴직금에 변동이 생긴다 퇴직금이 늘어날 때 이를 과거 근무원가와 관련한 것으로 해석하여 당기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여부를 따져 봐야 한다. 여기서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겠으나, 기업에 따라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해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금액은 충당부채 전입액과 퇴직급여 변동액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