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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r 06. 2024

생활 무용인의 꿈

나는 교만하다. 어떤 날은 아주 크게 넘어져 나의 무능을 절감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교만해질 수 있는 틈마다 나는 본래 나 자신보다 기꺼이 거대해진다. 나는 내가 부끄럽다. 

무용 수업에서 나는 자주 교만하다. 저는 잘 못 해요 하고 말하면서도 동작을 금방 따라하거나 빨리 외우기라도 하면 안면몰수하고 교만해진다.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교만한 나를 놓치지 않는다.

무용이 좋은 건 교만한 나를 가만두지 않는 데 있다. 아주 매몰찬 선생님처럼 교만해진 순간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내리친다. 어쭙잖은 자신감으로 동작 하나를 해내고 나면 그담엔 바로 고꾸라진다. 

무용에서 나는 나보다 커질 수 없다. 태어나면서 부여된 내 크기만큼만 존재할 수 있다. 그 이상으로 존재하려 들면 꺾인다. 박자를 틀리거나 동작을 틀린다. 교만은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욕심에 눈이 먼 나는 그대로 실수한다. 끝내 망치거나 끝내 실패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음악에 몸을 맡기고, 움직임의 흐름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무용의 정수다. 말로는 쉬운 이 정의는 거울을 마주하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와르르 무너진다. 음악을 듣는 귀를 멀게 하고, 움직임의 흐름을 분절시킨다. 

내가 드러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집어삼킨다. 내가 욕심에 잡아먹히는 모습이 이 영상엔 있다. 처음엔 틀린 부분만 눈에 들어왔는데 여러 번 반복해 보니,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은 욕심이 내 형상으로 변신해 있었다. 

교만을 다스릴 방도는 알지 못하지만 이 모습도 지금은 수용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만을 뒤로 세우는 방법을 영원히 알지 못할 테다. 그러고 싶지 않다. 교만을 무대 뒤편에 두고 오로지 나 자신으로만 무데 위에 우뚝 서보고 싶다. 그 깃털 같은 마음으로 춤을 춘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내 꿈은 생활 무용인이다. 프로 무용수도 취미 무용인도 아니고 댄서도 아니다. 생활 속에서 꾸준히 무용하는 사람, 무용을 생활처럼 여기는 사람, 생활과 무용의 경계가 없는,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생활 무용인이 되고 싶다. 

당도하지 않은 세계이기에 존재하는 땅일는지 믿기 어렵지만, 내 삶은 생활 무용인의 세계를 향한다. 그 세계에 이르면 나는 교만을 다스리는 지혜를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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