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블랙을 좋아하는 이유
요즘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는 ‘피로’ 일 것이다. 문화비평가인 한병철은 이를 피로사회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신경성 질환들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겪고 있다. 과거 사회가 규율과 억압을 중심으로 작동했다면 지금의 사회는 성과와 자기 관리의 압박 속에서 움직인다. 사람들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하고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외모를 관리하고,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남과 비교한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항상 더 나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압박 속에 시달린다. 더 세련된 취향, 좋은 직장, 안정된 삶을 보여주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제품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브랜드는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면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왜 이 물건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는 것처럼 느끼곤 한다.
나는 오히려 단순한 것에 끌리기 시작했다.
블랙이 그 예시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블랙은 단순하고도 정적인 색, 모든 것을 흡수하는 눈에 띄지 않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색이 없는 색처럼 보인다. 화려하지도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블랙이 단순하지만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블랙을 입고 다닐 때면 더 이상 어떤 증명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 내가 이 색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남에겐 그저 평범한 색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나를 가장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색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해야 하는 사회에서 블랙은 오히려 덜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 대신 나는 점점 단순한 물건을 좋아하게 되었다. 디자인이 복잡하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삶을 해치지 않는 물건들. 그런 물건들의 대부분이 블랙이다. 블랙은 튀지 않지만 쉽게 질리지도 않는다. 유행을 따르지 않지만 오랫동안 곁에 남는다. 색이 많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주변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블랙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색의 취향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복잡한 사회에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더 단순한 것들을 찾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블랙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삶의 기준과도 같은 색이 되었다. 더 화려한 것을 찾기보다는 기본을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점이 바로 블랙이다.
무수히 많은 외부의 피로 속에서 나의 삶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삶의 태도를 바로 세워야 한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정돈된 삶이다. 내가 보기에 편안하고 정리된 환경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안정감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나에게 블랙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앞으로 나는 이 블랙이라는 색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 보이는 블랙, 일상 속 물건과 공간에서의 블랙, 그리고 전통과 세계에서의 블랙까지. 이것은 단순히 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균형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블랙을 통해 내가 발견한 작은 기준들을 이곳 브런치에서 천천히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