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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짤리짤리 Nov 28. 2022

"어디 사세요?"의 의미

격차의 시대에 살아남기 : 지역


계속.


강남 개발 이후 지속되어온 신도시 개발 사례에서 보이듯, 우리나라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했던 방식은 기존 도심 외각에 밀집된 아파트 단지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공공기관과 대형 건설사들의 주도하에 이뤄질 수밖에 없는 대규모 주택공급 모델은, 구도심 재개발에도 복제되며 대한민국을 아파트 거주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는 각 지역 그리고 개별 주택들이 가진 고유의 모습들이 지워지고 점점 통일된 모습으로 표준화되고 동질화되어 감을 의미한다. 높고 길게 늘어선 아파트, 집합 상가, 나무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은 조경. 효율성 추구의 결과로 네모 반듯하게 지어진 건물의 모양까지. 위치는 달라도 서로를 닮아 있다.


 대단지 아파트가 우리나라 주택 공급을 주도하게 된 이유는 압축된 고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급격한 산업화 속 도시 성장과 거주민 소득 증가는 더 나은 주거환경에 대한 욕망을 키웠지만, 도로를 넓히거나 공원이나 복지시설을 확충하는 거주 환경 개선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빠르게 늘어가는 도시인구의 거주문제 해결이 필요했던 정부는 민간의 힘을 빌렸다. 대단지 아파트를 밀집 조성함으로써 부족한 공원과 주차장, 새로운 도로와 보도, 탁아소나 노인정 같은 인프라 시설까지 단지 안에서 한 번에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공공이 제공해야 할 기능을 민간에 맡기는 과정은 계속되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대단지들은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방치된 외부와 구분을 위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할 길에 담을 쌓아 올렸다.


 대단지 아파트 조성이 여러 개의 필지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묶고 재정비하는 과정이었다면, 담장 밖 일반 주거지는 수익을 쫓아 지분 쪼개기가 계속되었다. 아파트가 되지 못한 기존의 단독 주택들은 하나둘씩 빌라나 원룸 같은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어 갔다. 하나의 작은 개별 필지에 여러 개의 소유권이 생겨난 것이다. 비좁은 이면도로, 부족한 주차장과 공원등은 그대로인데 가구수만 늘어났다. 인구와 차량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점점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지는 주거환경은 다시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쾌적함, 편의성, 안전에 대한 요구로 아파트의 인기는 높아져 갔고, 표준화된 매물로 거래가 쉬운 이점은 투기의 대상이 되기에도 적합했다.  결과적으로 아파트는 다른 형태의 주택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치 상승이 꾸준히 이뤄져 왔다.


 그렇다면 서울의 아파트 한 채의 가치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2000년 강남과 비강남 아파트 평당 평균 시세는 각각 1088만 원, 728만 원이었다. 30평 아파트로 환산하면 강남 약 3.3억 원, 비강남 약 2.2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2020년 같은 평형의 평균 시세는 강남 20.7억 원, 비강남 9.6억 원으로 조사되었다. 20년 간 강남 아파트는 17.4억, 비강남 아파트는  7.4억 원의 가격 상승분을 기록한 것이다. 월평균 상승액으로 환산하면 각각 725만 원, 308만 원이다. 2000년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172만 원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소득이나 저축과는 무관하게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동산의 소유 여부에 따라 그리고 어느 지역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커다란 자산의 격차가 벌어져 왔음을 말해준다. 더구나 최근처럼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구간에 초점을 맞춘다면 격차는 더욱 커 보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른 격차 인식은 성인을 넘어 초등학생들이 쓰는 은어 속으로도 침투했을 정도로 선명해졌다. '전거', '월거', '빌거'는 각각 '전세 사는 거지', '월세 사는 거지', '빌라 사는 거지'를 칭하는 아이들의 은어로 알려져 사회에 적지 않는 충격을 주기도 했다.


 주택 가격 상승이 평범한 사람들이 저축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기 시작하자, 누구나 내 집 마련을 꿈꿀 수 있던 시대는 저물었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졌다. 과거 지주에게 생산량의 상당분을 내놓아야 했던 소작농들처럼, 이제 소득의 상당분을 주거비로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불안감과 박탈감이 서민 사회를 파고들었다. 이러한 구조는 높은 주거비용으로 유명한 홍콩이나 런던, 뉴욕 등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살아가는 청년들에겐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인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청년들의 열악한 거주 환경뿐 아니라 평균 이상의 소득을 가진 중장년층에게도 대도시의 주거비용은 큰 짐이 되어버렸다.

 다주택자, 유주택자, 무주택자로 나뉜 계급 그리고 어느 지역의 아파트를 소유하였는지에 따른 격차 확대는 직업이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주던 사회에서, 거주지가 신분을 말해주는 사회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느덧 '어디 사세요?'라는 한 마디는 상대를 규정하는 질문이 되어 버렸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유명 아파트 브랜드인지에 따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삶의 수준을 가늠하곤 한다.

 물론 그런 단편적 정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던 역동적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이 이어지는 고착화된 사회로 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의 격차가 커질수록 가진 자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외부 세계와의 보이지 않는 담을 쌓아 올린다고 믿는다. 사회 관계망뿐 아니라 물리적인 거주지 또한 예외 일 수 없다.

2020년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지역에 따라 집 값 격차가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교통이나 학군, 일자리보다 '해당 지역이 가지는 이미지'가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이미지란 것은 결국 부가 모이는 곳이란 상징을 의미한다. 그런 사회상이 반영된 탓인지 언젠가부터 온라인에서는 각종 '부동산 계급표'가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수의 박탈감을 기반으로 한 소수의 우월감은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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